[文·史·哲의 향기]시간은 실제로 흐르는 것일까?…공간은 무한으로 뻗어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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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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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여행/로빈 르 푸아드뱅 지음·안재권 옮김/416쪽·1만8000원/해나무

“공간과 시간이란 무엇인가. 실재하는 것인가.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시간은 공간과 어떻게 다른가. 시간은 실제로 경과하는 것일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수수께끼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시간과 공간 문제에 관한 철학 입문서다. 영국 리즈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가 ‘공간, 시간 그리고 무한’이라는 강의에서 소개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던지며 4차원 세계를 안내한다. 인간은 3차원인 공간에 대한 인식은 쉽게 하는 편이지만 4차원의 한 축인 시간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시간을 변화를 통해 감지한다. 출퇴근길 자동차가 달리는 것을 보거나 숲 속에서 새 소리를 듣거나 가만히 있어도 끊이지 않는 머릿속 생각들 때문에 시간을 감지하는 것이다. 시계가 있기 때문이 자연스럽게 시계가 시간을 측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계가 측정하는 시간이 정확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장치가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는지를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변화와 무관하게 조사할 수는 없다.

이런 한계에 대한 반응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른바 ‘시간 측정기준에 관한 규약주의’. 시간을 직접 조사 측정할 수 없는 문제를 한계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견해다. 세슘 원자의 공명 진동수를 기준으로 만든 세슘시계든 전통적인 해시계든 일단 표준을 정했으면 그 표준 자체가 정확한지 않은지 묻는 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통상 이런 생각으로 살아간다.

다른 하나는 ‘시간 측정기준에 관한 객관주의’다. 세 번의 맥박을 생각해보자. ‘첫 맥박 간격과 두 번째 맥박 간격은 같은가’라고 질문했을 때 규약주의자들은 시계로 재어보고 어떤 때는 같았고 어떤 때는 달랐다고 답한다. 그러나 객관주의자들은 기존 시계의 측정 체계와 관계없이 맥박 사이 두 간격이 실제로 동등한가하는 문제는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에는 시계로 잴 수 없는, 본질적인 시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객관주의의 견해를 따른다면 물체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뉴턴의 운동법칙과 같은 물리법칙들이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물체의 가속도는 질량과 힘의 함수라는 법칙은 시계로 측정되는 동등한 시간 간격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체스를 두는 컴퓨터를 보면서 실제의 복잡한 전자적 과정 대신 ‘컴퓨터가 생각한다’고 인식하듯이 시간에 대해서도 그렇게 인식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전복적인 탐색을 저자와 함께 따라가 보면 인간 자아와 연결된 질문과도 마주친다. 시간이 비실재적일 수 있다는 견해도 보이는데 그렇다면 죽음이란 결국 어떤 의미인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일 수 있다면 시간을 관통해 존재하는 자아의 동일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시간의 경과를 부정하는 것이 이른바 미래가 과거만큼 고정되어 있는 의미와 연결된다면 이 경우에도 인간을 자유행위자로 볼 수 있는 것인지 등의 문제를 만나게 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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