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의 미술평론, 화가들도 고개 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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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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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으로서의 면모 말하는
佛말로 친선협회 쿠뢰 회장

선구적 심미안… 피카소 진가 한눈에 알아봐
에펠탑 기념물 지정-건물 신축때 ‘문화비 1%’ 부과
문화장관 재직하며 프랑스 문화발전 큰 기여

프랑스 초대 문화장관을 지낸 소설가 앙드레 말로. 그는 피카소와 샤갈 등 당대 대표 화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하면서 평론가로 활약했던
 미술인이기도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프랑스 초대 문화장관을 지낸 소설가 앙드레 말로. 그는 피카소와 샤갈 등 당대 대표 화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하면서 평론가로 활약했던 미술인이기도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화가가 자기 작품을 비평하는 평론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앙드레 말로의 비평은 달랐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앙드레 말로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피에르 쿠뢰 국제 앙드레 말로 친선협회장(60). 11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만난 그는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 평론가로서의 말로의 면모를 부각시켰다.

앙드레 말로(1901∼1976)는 ‘인간의 조건’ ‘모멸의 시대’ 등으로 반파시즘 운동에 앞장선 작가로 프랑스 문화장관을 10년간 지냈으며 미술 평론가로도 필봉을 날렸다. 한국에서 그를 조명하는 이번 학술대회는 프랑스에서 여덟 차례 전시회를 연 이한우 화백(82)이 주도했다. 이 화백은 “말로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한국에서 제대로 소개하고 업적을 이어나갈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대회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SBS 라디오본부장을 지낸 유자효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이 대회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9일엔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앙드레 말로의 문학과 인생’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고, 12일엔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14일엔 부산 코모도 호텔에서 열린다. 각각 ‘앙드레 말로와 프랑스 현대회화의 거장들’ ‘앙드레 말로의 생애와 업적’을 주제로 삼았다.

쿠뢰 회장은 1996년 말로의 유족과 협의한 뒤 친선협회를 만들었으며 현재 프랑스 교육부 교수학습센터의 문화예술교육용 홍보 분야의 책임을 맡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말로 작품에 매료됐고 그를 추모하는 모임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2일 학술대회에서 문인이나 장관이 아니라 미술인으로서의 말로를 조명한다.

“입체파 화가 페르낭 레제는 1923년 22세에 불과한 말로에게 평론을 부탁합니다. 그만큼 말로가 인정받았죠. 그때 나온 글이 ‘종이달’입니다. 화가들이 말로의 평론을 보고 자신의 작품을 되돌아볼 정도였어요.”

피에르 쿠뢰 회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피에르 쿠뢰 회장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그는 “말로는 기존 미술사조에서 인정받는 대작보다 아방가르드풍의 작품에 대한 평론을 즐겨 썼고 1910년대 입체파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피카소와의 각별한 인연도 소개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군대에 맞선 민족전선의 공군으로 참전한 말로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감동을 받았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때 무차별 폭격으로 시민을 학살한 독일군의 만행을 고발한 작품이다. 쿠뢰 회장은 “말로는 피카소를 거장 세잔이나 렘브란트와 대등한 위치에 놓고 평가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쿠뢰 회장은 말로의 심미안과 다양한 경험은 문화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드러났다고 전했다. 말로는 당시 ‘철골 괴물’로 불리던 파리 에펠탑을 국가기념물로 지정했고 1964년 샤갈을 등용해 파리 오페라 극장의 천장을 장식했다. 건물 건축비의 1% 이상을 문화적 용도에 써야 한다는 ‘1% 법’도 제정했다. 쿠뢰 회장은 “예술가들과의 교류, 전쟁 참여, 아시아 여행 등이 장관이 됐을 때 영향을 끼쳤다”며 “그것이 현대 프랑스 문화 발전에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쿠뢰 회장은 아시아 예술품에 대한 말로의 관심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말로는 일본 호류사에 있는 백제관음상을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말로는 일본 여행 중 이 불상을 보고 처음엔 일본 문화재인 줄 알았습니다. 훗날 자료를 보고 백제 유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인생의 항로가 어긋나 한국에는 못 온 것 같습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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