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만드는 문화 선진국]<5·끝>제도적 보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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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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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축된 예술지원 늘리려면
강력한 세제지원 필요
‘취향 아닌 미래 위한 투자’
기업-사 회 인식도 달라져야

‘당근’이 커져야 문화가 웃는다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겸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은 22일 열린 한국메세나협의회 기자간담회에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기업의 예술지원액 감소세가 회복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그러나 예술지원 활동의 필요성에 대해 기업의 인식이 높아지는 만큼 지원 확대를 이끌어낼 적극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 기부금의 세액 공제 혜택 확대해야

이날 발표한 메세나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 기업의 문화예술 협력 액수는 1576억9000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5% 감소하며 2년 연속 하락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된 데다 신종 인플루엔자A의 여파로 기업들이 전시와 공연 후원 협찬 활동을 축소한 게 원인이다.

한국에서 기업의 문화예술 협력은 경기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외환위기 뒤인 2000년의 경우 기업의 문화예술분야 협력 액수가 700억 원 이상 감소했다가 외환보유액이 가파르게 상승한 2003년에는 800억 원 가까이 증가했다. 이 때문에 경기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기업의 문화예술 협력이 장기적으로 위축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를 개선하고자 고안한 제도적 장치가 지난해 11월 발의해 국회 계류 중인 ‘메세나 활동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다. 기부금을 비용으로 처리해 세금을 감면해주는 현행 방식을 바꾸어 프랑스처럼 매출액의 0.5% 한도 내에서 기부금의 60%까지 세액 공제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메세나협의회 이병권 사무처장은 “문화예술 협력을 활성화하려면 선진국과 같은 강력한 세제 지원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받는 조세 혜택이 커지면 기업의 문화예술 분야 협력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경기에 휘둘릴 우려도 낮아진다는 분석이다. 프랑스의 경우 2002년 3억4000유로(5100억 원)였던 기업의 문화예술 협력 액수가 2003년 세액공제 방식으로 개정한 메세나법을 도입한 뒤 2005년엔 10억 유로(1조5000억 원)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법안에는 문화접대비의 한도를 확대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현행 제도는 ‘기업의 문화접대비(접대를 위해 공연 전시 입장권이나 도서 음반 등을 구입한 비용)가 총 접대비의 3%를 초과할 경우 접대비 한도액의 10% 범위 내에서 추가로 비용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지만, 국내 기업 중 문화접대비가 총 접대비의 3%를 넘는 곳은 거의 없으므로 기업의 예술 협력을 촉진하려면 이 조항도 현실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메세나협의회는 지적한다.

○ 예술 협력은 투자

문화예술 협력에 관한 기업과 사회의 인식도 대폭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07년의 개인기부 현황(아름다운재단 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이 기부한 분야는 자선단체(71.2%)다. 다음으로 부랑자(19.7%), 종교단체를 통한 기부(16.5%) 순이었으며 문화예술 분야는 0.5%에 불과했다. 기부를 실천하는 내적 동기로 사회적 책임감(26.8%), 나눔을 실천하는 가족문화(24.7%)를 높이 꼽은 데서 보듯 ‘어려운 이를 위한 기부’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문화 예술분야 협력을 위한 공감대 형성은 미흡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메세나협의회의 조사에서도 국내 기업의 문화예술 협력 동기가 문화예술계 발전보다는 지역사회 공헌(42.6%)에 기울어져 있다. 문화선진국에서 문화예술분야의 협력은 장기적 투자로 이어지면서 선순환 구조를 낳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아츠앤드비즈니스의 필립 스패딩 선임이사는 “한국의 예술단체들이 대기업의 취향에만 의지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008년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기업과 예술이 견고한 파트너십을 이루기보다 기업 총수의 취향과 기호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예술단체 스스로 재원 마련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투명한 운영… 다양한 피드백… “믿음주니 장기후원”▼

‘모범사례’ 서울발레시어터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 단장(앞줄 왼쪽)이 연간 후원을 해온 CJ문화재단의 임직원 가족 자녀들에게 발레 동작을 지도하고 있다. 서울발레시어터와 CJ문화재단의 파트너십은 ‘예술 협력은 장기적인 투자’라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 사진 제공 서울발레시어터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 단장(앞줄 왼쪽)이 연간 후원을 해온 CJ문화재단의 임직원 가족 자녀들에게 발레 동작을 지도하고 있다. 서울발레시어터와 CJ문화재단의 파트너십은 ‘예술 협력은 장기적인 투자’라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 사진 제공 서울발레시어터
국내 공연계에서 성공적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대표 단체로 서울발레시어터(SBT)가 꼽힌다. 1995년 창립한 SBT는 2007년 CJ문화재단과 공식파트너십을 체결한 뒤 2009년까지 해마다 1억 원씩 연간 운영자금을 받았다. 올해는 경기 불황의 여파로 5000만 원을 받았다. 2007년 맺은 파트너십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메세나협의회의 순수예술 지원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지만, 매년 이를 갱신할 수 있었던 것은 SBT의 활발한 활동 덕분이었다.

파트너십 체결 뒤 SBT는 ‘she, 지젤’(2009년), ‘Remembering of You’(2008) ‘마스크’(2007) 등 해마다 새로운 창작발레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예술단체로는 드물게 연차보고서도 만들어 후원사에 재정 현황을 공개했다.

권기원 SBT 기획팀장은 “단체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이는 기업의 신뢰를 얻고 후원이 계속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작품에 따라 제작 지원을 해온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이 보고서를 보고 올해 초 별도로 개인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

후원금을 받는 대신 SBT는 다양한 피드백을 기업에 제공한다. CJ문화재단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발레교실을 열고 임직원 가족의 아동들에게 무대 경험을 시켜준다. 이 경험은 직원들에게 발레에 대한 지식을 넓혀주고 지원의 필요성도 깨닫게 해준다. CJ문화재단 임직원들은 발레 수업을 받은 뒤 SBT 단원들의 토슈즈 비용을 지원하는 사내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권 팀장은 “문화 예술 협력이 장기적인 투자라는 인식을 기업과 예술단체가 공유한 결과 오늘날과 같은 성과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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