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 - 4. 대중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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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3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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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4. 대중목욕탕

팍팍한 세상,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더욱 더 훈훈했던 동네 목욕탕, 절절 끓는 온돌 바닥과 따뜻한 얘기가 오고가며 우리 내 사랑방이던 동네 목욕탕이 사라져 가고 있다. 24시간 사우나, 불가마, 찜질방이 들어서면서 동네 목욕탕은 외면당한 지 오래다. 현재 국내에 영업중인 목욕탕은 8200여 개(한국 목욕업 중앙회 집계)가 전부다. 이 중 찜질방과 겸업하는 대형 업소가 1000여 개다.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마을에 40년 넘게 이곳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동네 목욕탕 ‘중앙탕’의 낡은 간판에 불이 켜져 있다. 바가지에 담긴 양치용 소금, 탈의실 벽에 붙은 음료수 오란씨 포스터,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오래 된 체중계 등 1968년 개업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목욕탕 입구에 들어서면 1평도 채 안 되는 카운터가 있다. 좌측은 여탕, 좁은 계단 위로 올라가면 남탕이 나온다. 탈의실에 들어서자 20년이 훌쩍 지난 ‘신제품 오란씨’ 광고가 한눈에 들어온다. 목욕탕 내부로 들어가면 누렇게 변색 된 하늘색 타일이 탕 주변을 감싸고 있다. 개폐식 샤워기의 물줄기가 힘차게 나온다. 온탕 2개, 냉탕 1개와 한증막까지 설치돼 있다. 손님은 아무도 없다.

세신사 박희원(61) 씨는 “하루에 손님이 많이 와야 20명 정도”라면서 “돈을 벌 목적으로 이곳에 남아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79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보일러 수리만 담당하던 게 지금은 세신사, 이발사, 카운터 등 중앙탕의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이곳은 68년 개업해 80년대 까지만 해도 하루에 100여 명 이상 손님이 왔다.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이면 300명이 넘는 손님이 몰려 물탱크 속 물이 바닥난 적도 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90년대부터 들어선 24시간 대형 목욕탕과 2000년대엔 찜질방 등이 생기면서 손님이 많이 줄었다. 주변 목욕탕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한 달 수입은 100만원도 되지 않는다. 손님 대부분은 수십 년째 단골들이다. 사장 담란향(66)씨는 “돈 벌 생각이면 벌써 문 닫았다”라며 “이웃 간의 정으로 이곳을 지킨다”고 말했다.

억척스러운 엄마 손에 이끌려 ‘아얏’ 소리를 내며 때수건을 요리조리 피하던 기억, 빨대 꽂은 요구르트나 초코우유 한 모금으로 고단한 몸의 피로를 풀던 때. 화려한 옥돌도, 번쩍거리는 대리석 하나도 없지만 이곳에는 정(情)이 남아 있다.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shk9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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