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우리도 행복한 대통령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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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영화 연극 출판 등… 요즘 떠오르는 문화 코드는 대통령, 왜?
절대권력 아닌 ‘인간 대통령’ 다룬 영화 ‘굿모닝…’ 연극 ‘박통노통’ 인기
DJ-盧서거에 朴서거 30주기 겹쳐 국민들 긍정적 재평가 움직임 공감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6, 8, 0, 2, 1, 9.”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TV 화면을 바라보던 대통령이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당첨금 244억 원의 월드컵 로또에 당첨된 것. 그러나 환희도 잠시, 대통령은 고민에 휩싸인다.
얼마 전 TV에 출연해 “로또에 당첨된다면 국민을 위해 쓰겠다”고 말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당첨금을 어찌할지 고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3주째 흥행순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이다. 이순재 고두심 장동건 등 유명배우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나오는 이 옴니버스 영화 속의 대통령에겐 절대권력, 독재, 암투, 배신, 몰락 같은 어두운 이미지는 없다. 대신 ‘사람’의 얼굴을 한 평범한 대통령들이 ‘행복’을 얘기한다.

하반기 문화계의 주인공은 단연 ‘대통령’이다. 영화 연극 뮤지컬 출판 등 각 분야에서 대통령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작품들 속의 대통령은 극단적 숭배의 대상도, 저주와 경멸의 대상도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 문화코드로 떠오른 대통령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지난달 28일 개봉 이래 관객 230만 명을 동원했다. 9월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연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저승에서 만나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벌인다는 연극 ‘박통노통’과 대통령 암살범들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어쌔신’이 올랐다. 출판계에선 노 전 대통령을 다룬 ‘성공과 좌절’,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와 박 전 대통령을 다룬 ‘박정희 한국의 탄생’ 등이 출간돼 판매순위 베스트 20위 안에 들었다.

○ 풍자보다는 긍정

올 하반기 쏟아진 작품들의 특징은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적극적인 평가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과거 대통령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절대권력에 대한 비유나 풍자로 채워져 있던 것과 다른 분위기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3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대통령들의 고민은 돈, 사랑, 일과 가정이라는 일반인들의 관심사와 다르지 않다. 권력자에 대한 딱딱하고 엄격한 잣대에서 벗어나 있다. 영화 결말에서 이혼 위기로 고민하는 여성 대통령(고두심)에게 청와대 요리사는 “우리 국민 중 불행한 대통령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공감하는 관객들의 반응에는 불행한 대통령을 양산해 온 우리 현대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또한 거액의 로또 당첨금을 사회에 기부하는 대통령, 북-일 간의 군사 위기에서 북한을 설득하고 도와주는 대통령, 민주화 투쟁 공헌 등을 다룸으로써 전현직 대통령들을 두루 긍정적으로 보듬으려 한다.

연극 ‘박통노통’
연극 ‘박통노통’
연극 ‘박통노통’은 논쟁을 벌이던 박정희,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며 결국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서적 ‘박정희 한국의 탄생’ ‘성공과 좌절’ 등도 각각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반박하고 있다.

○ 두 대통령 서거와 박정희 서거 30주기 겹쳐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근저엔 올 들어 대통령 서거를 두 차례 겪은 시기적 요인, 그리고 불행한 지도자를 보는 데 지친 심리적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재일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서거와 박정희 대통령 서거 30주기라는 시기가 겹치면서 동정론과 재평가 움직임이 맞물린 것 같다”고 말했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불행한 대통령들을 연이어 보다 보니 이제는 인간적이고 행복한 대통령을 보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며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그러한 심리를 충족시켜 주는 일종의 ‘판타지’”라고 분석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링컨이나 루스벨트가 당파에 상관없이 국가의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듯이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면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중심을 찾아 간다”며 “대통령과 권력이 저항과 풍자 타깃에서 차분한 평가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국가 체제가 안정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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