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벨문학상 타려면]<상>번역, 양보다 질

  • 입력 2009년 10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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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소개된 고은 작품 66종
수준 높은 번역은 10% 그쳐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가장 빈번하게 거론하는 것은 번역 문제다. 소수 언어로 쓰인 한국문학이 세계 독자를 확보하려면 수준 높은 번역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수한 번역 없이 노벨상 수상은 요원하다.

○ 양적으로 증가, 수준은 답보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 오에 겐자부로 등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낸 일본은 번역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하고 1950년대부터 국가, 민간 협력으로 모두 2만여 종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해왔다.

반면 지금까지 외국에 소개된 한국문학 작품은 모두 1400여 종. 일본과의 격차가 크지만 2001년 이후 정부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과 민간단체인 대산문화재단이 문학 번역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현재까지 번역된 국내 주요 작가의 작품 수는 일본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당시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17개국에 79개 작품이 번역된 상태였다. 현재 시인 고은, 소설가 이문열 씨는 17개 언어권에 각각 66, 65종의 작품이 소개됐다.

그러나 질적 수준은 아쉬운 상태다. 대산문화재단의 곽효환 국장은 “미국의 한 대형 출판사에서 한국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 애썼는데 작품을 보낼 때마다 번번이 거절당했다”며 “첫 번째 사유가 늘 번역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문학번역원이 발표한 영어 번역본 평가에 따르면, 원작의 분위기를 충실히 살리면서 원어민 독자가 무리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수준의 우수작품은 10권 중 1권(분석대상 총 72작품 중 7작품)에 불과했다.

○ 역량 갖춘 원어민 번역가 부족

번역 수준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작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상호 작용하는 원어민 번역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세계 문학시장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려면 원전 자체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지인이 이해 가능한 ‘소비자 중심의 번역’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원어민 번역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력이 아직 부족하다. 번역원에 따르면 2001년 이후 해외에 우리 문학을 소개한 번역가 376명 중 원어민은 168명이다.

현지 출판시장에서 파급력을 발휘하는 유명 번역가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데는 일본 원전보다 영역본이 낫다는 평까지 받은 미국인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손꼽히는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 역시 프랑스 번역가인 유수프 브리오니가 꾸준히 프랑스어권에 소개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전문가들은 한 언어권에 이 정도 역량을 갖춘 번역가가 다섯 명 이상 있어야 안정적이라고 평가하지만 한국문학의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 다양한 인센티브, 한국학과의 연계 필요

현재 한국문학번역원은 번역의 질적 문제를 극복하고 우수한 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번역공모제, 번역아카데미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언어권별 한국문학 전문 번역가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KLTI(한국문학번역원) 트랜슬레이터(translator)’ 제도도 신설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한국문학을 좋아해 번역에 나서는 원어민 번역가가 늘지 않는 한 이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학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중국의 극작가 가오싱젠이 2000년 노벨문학상을 탄 데는 중국문학의 권위자인 요란 말름크비스트 스톡홀름대 교수가 한림원 위원이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학은 76개국 1630개 대학에 관련 강좌가 개설돼 있지만 한국학은 40% 수준인 55개국 643개 대학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영국 뉴캐슬대처럼 재정난 등으로 한국학 강좌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곽 국장은 “노벨문학상이나 한국문학의 세계화도 결국 국가 브랜드, 국력과 연계되는 문제인 만큼 해외에서 한국학이 밀려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며 “국가 차원의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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