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9>클래식 명곡을 낳은 사랑 이야기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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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명곡을 낳은 사랑 이야기/니시하라 미노루 지음·문학사상사

《“창작에 대한 끊임없는 충동과 사랑의 열정은 결국 같은 곳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결과는 때론 순수한 사랑으로, 때론 파탄을 부르는 사랑으로, 또 때론 불륜의 사랑으로 나타났지만, 그래도 그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 애썼고 그런 정신적인 긴장이 불후의 명작을 낳았다. 그들의 사랑과 결혼은 명곡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명곡도 없었다

슈만은 끊임없이 사랑을 한 작곡가였다. 실연당한 아베그와의 추억을 ‘아베그 변주곡’에 담았고, 약혼했던 에르네스티네의 아버지 프리켄 남작의 주제(主題)를 기초로 ‘교향적 연습곡’을 작곡했다. 에르네스티네와 파혼하고 클라라에게 사랑을 맹세한 뒤에도 레이들라브와 사랑에 빠져 ‘환상소곡집’을 바쳤다. 슈만의 ‘사육제’에는 키아리나(클라라)와 에스트렐라(에르네스티네)가 함께 등장한다.

슈만의 제자인 브람스는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다. 슈만이 자살 미수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브람스는 스승의 집에 기거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거들었다. 젊은 날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불태웠던 브람스는 그 집에 드나들면서 셋째 딸 율리에게 빠졌지만 그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상심했다. 그 실연의 고뇌가 ‘겨울의 하르츠 여행’으로 태어났다.

일본 도호가쿠엔대 음악학부 교수인 저자는 18세기 말∼20세기 초 활동한 작곡가 26명의 사랑의 행적에 주목했다. 음악가들이 직접 쓴 편지와 일기, 메모를 인용해 사랑과 결혼, 만남과 이별을 드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작곡가가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었는지 생생하게 다가온다.

베를리오즈는 ‘짝사랑 전문’이었다. 무명 작곡가였던 24세 때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 소속의 유명 여배우 해리엣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연주회를 열어 관심을 끌어보려고 애썼지만 무시당한다. 그는 애달픈 마음과 절망적인 심정을 ‘환상교향곡’에 담았다.

이후 그는 피아니스트 마리와 약혼했지만 3개월 만에 파혼을 당한다. 마리는 명문 피아노업체 후계자와 결혼했다. 약혼자의 변심으로 상심한 베를리오즈는 해리엣과 다시 만나 결혼했다. 해리엣과 재회한 그 해에 ‘환상교향곡’의 속편인 ‘렐리오’를 작곡했다. ‘환상교향곡’에서 베를리오즈는 사랑을 얻지 못해 절망하며 스스로를 사형에 처했지만 ‘렐리오’에서는 다시 살아 돌아온다.

드뷔시는 복잡한 여자관계로 유명했다. 젊은 시절 아마추어 성악가 마리에게 연정을 품고 25곡의 가곡을 바쳤다. 또 가브리엘은 드뷔시와 동거하면서 작곡활동을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이때 만든 곡 중엔 그의 출세작인 ‘목신의 오후의 전주곡’이 있다.

그 뒤 드뷔시는 가수 테레즈와 약혼을 발표하지만 가브리엘과의 동거 사실이 탄로나 결혼은 무산됐다. 이후 드뷔시는 로잘리와 결혼한 지 5년 만에 은행가의 부인 에마와 깊은 관계에 빠진다. 둘 다 배우자가 있었지만 가정을 버리고 사랑의 도피를 택했다. 드뷔시는 에마와의 사랑을 자양분 삼아 창작 의욕을 불태웠다. 피아노 작품 ‘기쁨의 섬’은 에마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나자 드뷔시는 처음으로 얻은 자식을 위해 ‘어린이의 세계’를 작곡했다. 이때서야 드뷔시의 애정 편력이 끝났다. 작곡가 포레도 에마를 사랑했다. 드뷔시와 에마가 만나기 전, 포레는 돌리라는 애칭으로 불린 에마의 딸 엘렌을 위해 ‘돌리 모음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사후에 동성애설이 터져 나온 차이콥스키, 질투의 화신으로 불린 아내 때문에 고통을 겪은 푸치니, 리스트의 딸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바그너, 나폴레옹의 누이동생과 열애를 즐긴 파가니니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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