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옥스퍼스대 밀러 교수―고려대 곽준혁 교수 e메일 대담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50분


“이민자, 동화보다는 동등한 통합으로 수용을”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여 고유한 문화 유지하며 시민 될 충분한 기회 줘야

《최근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로 옮겨가면서 다양한 갈등과 논쟁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문화주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데이비드 밀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63·오른쪽 사진)와 곽준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41)의 e메일 대담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밀러 교수는 “글로벌한 현대 세계에서도 여전히 민족주의가 매우 중요한 정치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다문화·탈민족 시대의 민족주의 이론가’로 유명하다. 대담의 전문은 10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계간학술지 아세아연구 52권 2호(여름호)에도 실릴 예정이다. 》

▽곽준혁=최근 국경을 넘어선 이주가 급증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다문화 공존’이 중요한 정치적 화두로 등장했다. 오랫동안 종족적 동질성을 유지해온 한국 사회도 최근 결혼이주 여성의 유입 등으로 더 이질적인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면서 다양한 갈등과 논쟁을 겪고 있다.

▽데이비드 밀러=먼저 민족적 정체성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 등에서는 ‘민족은 인종적 문화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이라고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민족적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는 시대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예전에는 종교와 인종이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영국인은 기독교를 믿는 백인이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는 언어(영어), 역사, 정치 전통을 공유하는지가 영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동질감을 갖게 하는 요소이다. 한국 사회 역시 오랫동안 내려온 민족적 정체성 중 계속 유지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 버리거나 재구성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곽=한국 사회가 다문화 공존을 모색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 있다면….

▽밀러=다문화 정책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에게 한 사회로 통합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서로를 묶는 공통된 요소들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민족 형성(nation-building)’의 과정이다. 소수자 집단이 자신의 문화적 특성을 상실하고 주류에 동화(assimilation)돼서는 안 된다. 각자의 고유한 생활양식을 지키면서 동시에 구성원 전체가 민족에게 헌신하도록 하는 통합(integration)이 다문화 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

▽곽=다문화 공존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수 문화의 다양성과 고유성의 보호에만 신경 쓰다가는 민족적 정체성이 유지되기 힘들다. 결국 소수자가 사회의 주류에 동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동화와 통합의 차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밀러=동화란 소수 집단이 자신들의 고유한 특성들을 상실하고 주류 문화의 한 부분이 되는 과정이다. 반면 통합은 소수자 집단이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치·경제 분야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과도 많은 사회적 접촉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은 문화적으로도 소수자 집단이 개인적 생활양식 같은 고유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곽=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펴야 한다는 쪽과 제한 없는 이주가 사회 통합을 해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상대적으로 오랜 이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주류(主流)와 이주자 간의 갈등 해결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밀러=역사적으로 보면 앞에서 언급한 국가들의 경우 이민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민자 수가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중요한 것은 복지국가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이민자들에게 줄 것이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이민을 오는 것은 자유지만 관용 말고는 해 줄 것이 없으니 자중하고 스스로 알아서 순응하라”는 식이었다. 최근의 문제는 이주자 집단과 이들을 받아들인 나라 모두의 기대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민자들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가 인정받기를 바라면서 일정 정도의 권리를 요구한다. 이들의 문화가 이주해온 사회의 원칙들과 상충하기도 한다.

▽곽=이주자들이 새로운 국가의 시민이 되려는 자발적인 동기를 갖게 하는 정책이 필요한 것 같다.

▽밀러=이주해 온 집단과 그들을 받아들이는 사회 사이의 ‘공정한 계약’이 필요하다. 이주자를 받아들이는 사회는 적절한 기간이 지난 후에 그들에게 완전한 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반면 이주자들은 통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경제 분야 등에서 자신들의 몫만큼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정리=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 데이비드 밀러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하고 1974년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80년부터 이 대학 교수로 정치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영국 왕립학술원 회원으로 민족주의와 다문화주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민족적 책임성과 지구적 차원의 정의(National Responsibility and Global Justice)’ ‘시민성과 민족적 정체성(Citizenship and National Identity)’ ‘민족성에 관하여(On Nationality)’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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