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죽음과 재앙 섬뜩한 일상

  • 입력 2009년 4월 11일 02시 56분


◇늑대의 문장/김유진 지음/288쪽·1만 원·문학동네

“매 편을 쓸 때마다 세계가 하나씩 끝나는 소설들.” 작가 자신이 말하듯, 소설가 김유진 씨의 첫 소설집 안에는 원인 모를 폭사, 테러와 지진 등이 출몰한다. 이런 재앙은 한 마을이나 도시 혹은 돌풍지대에 놓인 집처럼 한정된 공간에 몰아닥쳐 극한의 불안과 공포를 유발한다. 기형아를 낳은 거대한 몸의 임산부, 홍반이 퍼진 한 팔만 다른 신체에 비해 거대하고 단단한 소년,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아이 등 작품마다 등장하는 이들의 면면도 범상치 않다. 사고와 죽음도 빈번하다. 서사보단 이미지가 강조된 이런 작품들은 시적(詩的)인 단문과 어울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늑대의 문장’은 발병 원인도 규칙도 없는 폭사가 마을 전체로 퍼져 가는 상황을 그린 소설. 방치되거나 버려진 개들이 밤만 되면 몰려다니며 가축과 폭사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먹어치운다. 폭사의 원인을 늑대로 돌린 사람들은 산길을 헤매며 늑대 새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밤이 되면 늑대는 다시 사람들을 습격하는 섬뜩한 일들이 일상이 된다.

‘빛의 이주민’은 매년 엄청난 예산과 인원을 투입해 테러 대비 훈련을 하는 도시의 이야기. 단 한 번도 테러가 일어난 적이 없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실제 상황처럼 혹독한 모의훈련을 한다. 도시 노동자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막연한 불안과 초조함이 ‘도시 최초의 폭탄테러범’이 되고 싶어 한 소년 테러범의 등장과 얽혀 들며 비감을 풍긴다.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의 안온하면서도 위태로운 일상을 그린 ‘낙타 관광’, 실종된 할머니 집에서 겪은 몽환적인 일들을 다룬 ‘고요’ 등 작품집 후반에 실린 작품들은 전작들이 보여 준 밀도 높은 긴장감을 살리면서도 서사구조가 강화되는 변화를 보여 준다. 작가는 “지금까지는 대체로 세기말적 분위기, 기형적인 미, 재난 가운데 존재하는 고요와 의연함 등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며 “앞으로는 현실에 밀착된 서사 중심의 작품들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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