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명화 여행] 시인 조연호가 본 ‘비극’

  • 입력 2009년 4월 7일 07시 59분


가면이 나인가, 내가 가면인가 그 참을 수 없는 비극의 유혹

죽은 작가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에 갈 때마다 궁금한 게 있다.

작가의 흔적은 있지만 작가 본인은 없다. 그가 살아 돌아와 내가 만날 수만 있다면, 혼령이라도 전시장에 있다면 그가 웃고 있을지 궁금했다.

클림트전 역시 그랬다. 관객이 참 많다. 폭발적 인기다. 클림트 문양의 액세서리 등 판매를 위한 장신구 앞에도 손님이 빼곡하다.

작가는 흡족할까? 그의 영혼이 전시장에서 웃고 있다면, 클림트는 진정한 작가가 아니란 생각을 했다. 인기와 돈에 연연하는 예술가는 끔찍하게 싫다. 하지만 예술가는 신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예술가들에게 100%% 순결을 요구하기보다, 내가 포기하고 99%% 순수한 부분만 골라 동경하기로 했다. 예술가는 세속적 인기를 초월했으면 좋겠다.

조연호 시인 역시 클림트 전을 관람하며 보고 싶은 것들만 선별해 봤다. 상업용 목적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보지 않았다.

“화가가 자신의 인생과 시대적 조류에 대해 말하진 않았을 거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가짜”라며 클림트의 사생활에 대한 설명도 읽지 않았다.

작가의 인생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평론가의 몫이고, 관람객으로서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얘기였다.

“귀를 자르면서까지 순수미술을 고집한 사람이 있는 반면, 상업 미술을 하며 산 사람도 있다. 상업이라고 나쁘고 순수라서 좋다는 말이 아니다. 예술이 꼭 고매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보는 사람에게는 볼 권리가 있다. 클림트를 순수 미술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적게는 대중상업미술을 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내가 보고 싶은 클림트만 봤다.”

조 시인은 드로잉도 보지 않았다. 전시장에는 ‘에로틱 드로잉’이라는 주제로 따로 전시장이 있다. 1층에서도 클림트의 미완성 습작 드로잉을 볼 수 있지만, 2층 여성 누드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와 동반해서 볼 것을 권유하면서까지 많은 양이 전시돼 있다. 클림트는 생전에 4000 여 점의 드로잉을 남겼고, 1960년대부터 드로잉이 세상에 알려졌다.

“카프카 작가가 죽을 때 친구에게 엄청난 양의 원고를 불태워달라고 줬는데, 책으로 발간됐다. 독자들은 행복하지만 카프카는 원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완벽을 기하고 싶었을 거다. 클림트도 마찬가지다. 작품으로서의 드로잉도 있지만, 모티브를 찾기 위해 그리다 만 것도 있다. 결과를 위해서 필요한 무엇이었을 텐데, 소홀하게 보고 싶더라. ‘완결된 것’, ‘순수한 것’만 보고 싶었다.”

조 시인은 클림트의 완결되고 순수한 그림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유디트Ⅰ’을 보니 모조품에서 느낄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확실히 진본에서 느껴지는 숭고함이 있다. 볼품없고 사기꾼 같은 사람이라면 몇 십 년이 지나도록 미술의 대가로 인정받을 순 없었을 거다.”

시인 조연호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터넷문학방송 ‘문장’의 음악감독 겸 프로듀서, 인도악기 시타르를 연주한다. 시집 ‘죽음에 이르는 계절’, ‘저녁의 기원’, 산문집 ‘행복한 난청’ 등을 썼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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