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기회주의 젊은작가와 노화가의 만남

  • 입력 2009년 3월 7일 02시 59분


예술과 저널리즘을 통렬히 조롱하다

◇나와 카민스키/다니엘 켈만 지음·안성찬 옮김/248쪽·1만 원·들녘

열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신경질적인 남자의 등장은 처음부터 우스꽝스럽다. 화장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객실 승무원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싸우거나, 객차에 앉아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해 혹평을 퍼붓는 기사를 쓴다.

‘역사적 인물들을 서투르게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우리를 죽도록 지루하게 만들었던…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술들…!’ 이 남자는 몇몇 일간지에 기사를 기고하는 세바스티안 쵤너라는 기자로 전기를 쓰기 위해 시골에 은둔 중인 초현실주의 화가 카민스키를 찾아가는 길이다.

독일의 각광받는 젊은 작가 다니엘 켈만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이 소설은 부와 명예를 좇는 기회주의적인 작가 쵤너와 잊혀져 가는 괴팍한 노화가 카민스키를 통해 예술과 저널리즘의 허구를 블랙 유머로 유쾌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쵤너는 미술계의 경향이나 유명 화가를 공격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명성을 얻으려 하지만 여의치 않자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처음부터 카민스키의 전기를 쓰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발튀스, 프로이트, 카민스키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하는 사이 발튀스가 죽었고, 프로이트가 이미 다른 전기 작가와 인터뷰를 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애인은 떠났고 집도 돈도 없지만 카민스키가 죽은 ‘직후’ 전기를 출간함으로써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으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카민스키는 마티스의 제자이자 피카소의 친구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와전돼 ‘시력을 잃은 화가’로 헛소문이 나면서 단박에 그의 그림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는 시력이 계속 나빠진 뒤 딸과 함께 알프스 어딘가로 자취를 감췄다. 얼핏 쵤너의 의도적인 접근에 무방비 상태인 물정 어두운 노인네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쵤너가 명성을 원하는 만큼, 카민스키 역시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숨겨진 속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목적과 욕심이 뚜렷하며, 개성 넘치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부터 시니컬한 웃음과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해 시선을 붙든다. 세상에 기만당했음을 깨닫게 되는 야심 찬 전기 작가의 좌절과 과거를 그리워하는 의뭉스러운 노화가의 전모가 반전을 거쳐 드러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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