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15>求仁而得仁이어니 又何怨乎리오

  • 입력 2009년 3월 2일 03시 00분


공자와 제자들은 신념을 에둘러 밝히고는 했다. ‘논어’ 述而편에서 제자들은 衛나라의 內紛(내분)에 대해 공자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해 했다. 위나라 靈公(영공)은 어리석고 부인 南子는 음탕했다. 기원전 496년, 세자 괴외(괴외)는 南子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국외로 망명했다. 영공이 죽은 뒤 南子는 공자 영(영)을 즉위시키려 했으나 사양하자, 괴외의 아들 첩(輒)을 세웠다. 그가 出公(출공)이다. 이로써 16년 동안 부자간에 정권 다툼을 벌였다.

공자의 제자 염유(염有)가 “선생님은 위나라 임금(즉 出公)을 인정할까요?”라고 하자 자공(子貢)은 “내가 곧 물어보죠”라고 했다. 자공이 들어가서 “伯夷(백이)와 叔齊(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물으니 공자는 “옛날의 어진 사람이다”고 했다. 자공이 “그들은 세상을 원망했습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자공은 나와서 “선생님은 위나라 임금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求仁(구인)은 인을 추구한다는 뜻이고, 得仁(득인)은 인을 실행했다는 뜻이다. 何(하)는 의문사이다. 한문에서는 의문사가 목적어이면 술어(동사)보다 앞에 온다. 또 한문에서는 과거 시제의 보조사가 발달하지 않았다. 문맥상 何怨乎(하원호)를 ‘무엇을 원망했겠는가’로 풀이했다.

백이와 숙제는 孤竹國(고죽국)의 왕자들이었다. 아버지가 숙제를 후사로 세웠으나 숙제는 형 백이에게 양보했고 백이는 부친의 명을 어길 수 없다며 도망했다. 숙제도 도망했다. 공자는 그들이 인을 실행했으며 부자 사이에도 형제 사이에도 원망이 없었다고 보았다. 人倫을 중시한 공자는 王位 때문에 부자가 다투는 일 자체를 악으로 보았기에 출공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적 맥락을 떠나, 求仁而得仁은 이상의 추구야말로 인간의 숭고한 행위임을 가르쳐 준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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