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조문인파 38만7420명 한줄로 서면 300㎞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1일 02시 59분



20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엔 1만여 명이 나와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날 장례미사가 끝난 뒤 김 추기경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장지를 향해 움직이자 이를 지켜보며 눈물 흘리는 가톨릭 신자와 시민들. 홍진환 기자
20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엔 1만여 명이 나와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날 장례미사가 끝난 뒤 김 추기경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장지를 향해 움직이자 이를 지켜보며 눈물 흘리는 가톨릭 신자와 시민들. 홍진환 기자
선종부터 하관까지… 숫자로 본 92시간

우리 시대 마지막 어른인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절차가 20일 오후 하관예절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그의 육신은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뜻은 시민들의 가슴 속에서 오롯이 부활하고 있다. 김 추기경의 선종부터 하관예절까지 92시간을 숫자로 정리했다.

0=김 추기경의 빈소에 화환은 0개, 조의금도 0원이었다. 천주교 장례위원회는 장례를 검소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게 치르라는 김 추기경의 당부대로 화환을 받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화환도 돌려보냈다. 빈소에는 추기경의 영정과 1970년 받은 국민훈장만 놓였다.

1=김 추기경의 관에 넣은 하나의 부장품인 나무 묵주. 당초엔 추기경 반지와 모관 등도 거론됐지만 결국 간소한 장례를 강조한 고인의 뜻에 따라 나무 묵주 하나만 손에 끼웠다.

2=김 추기경이 기증한 각막. 추기경은 1990년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각막 기증을 서약했다. 추기경의 각막은 선종 직후에 적출됐으며 17일 70대 노인 2명에게 새로운 빛을 찾아주는 데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까지 나눔을 실천한 추기경의 사랑은 들불처럼 번져 19일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는 장기기증 신청이 700건이 넘기도 했다.

4.6=경기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직자묘역에 마련된 추기경 묘의 크기는 일반 사제의 것과 똑같이 가로 164cm, 세로 281cm로 면적 4.6m²에 불과하다. 묘는 노기남 대주교의 봉분 옆에 마련됐다.

19.2=20일 오전 10시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생중계한 김 추기경 장례미사의 시청률은 19.2%(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서울 기준)로 평소 이 시간대 평균 시청률 14.8%보다 4.4%포인트 높았다.

21=서울에 대사관을 둔 96개국 중 21개국이 조문 사절을 보냈다.

217=장례위원회가 발급한 취재용 프레스 카드.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반영해 취재기자들이 몰려들었다.

501=서울 명동성당에 사람이 몰리면서 화장실 수도 등 물 사용량이 하루 평균 160∼170t씩 총 501t에 달했다.

800=하루 평균 800여 명의 평신도가 빈소를 찾은 사람들을 안내하고 근조 리본을 나눠주며 주변 정리를 하는 등 자원봉사에 나섰다.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 수녀 신학생 등 1300여 명도 명동성당을 찾아 일을 도왔다.

2000=김 추기경에 대한 추모 행렬은 명동성당 옆 가톨릭회관을 지나 지하철 명동역까지 2000m에 달했다. 그러나 새치기나 실랑이 등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평화롭고 조용하고 안정된’ 줄이었다.

20만=원하는 조문객에게 무료로 나눠준 검은 근조(謹弔) 리본 수.

38만7420=17일 이후 김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명동성당 빈소에 조문 온 사람은 17일 9만2000여 명, 18일 14만2000여 명, 19일 15만3000여 명으로 총 38만7420명이었다. 사람들의 간격을 1인당 75cm로 잡으면 약 300km에 달하며 이는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다. 20일 장례미사가 열린 명동성당에는 1만여 명이 왔고, 장지까지 온 사람은 2000여 명이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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