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받은건 각막이 아닌 잃어버린 내면의 눈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1일 02시 59분



20일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 보내는 장례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소설가 공지영 씨. 이훈구 기자
20일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 보내는 장례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소설가 공지영 씨. 이훈구 기자
■ 소설가 공지영의 작별인사

뺨을 후려치는 찬바람 속에도

가시는 길 방해될까 모두 숨죽여

그의 이름은 따스함이요 희망이니

벌써부터 그리움이 밀려온다


오전 8시 반에 도착했는데도 명동성당 앞 광장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버린 줄 알았던 겨울이 다시 돌아온 듯, 찬바람은 사람들의 눈물 젖은 뺨을 후려쳤다. 15분 정도 줄을 서 있는데 벌써 다리가 얼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눈 쌓인 바닥에 얇은 스티로폼을 깔았고 성당 안과 동시에 차가운 광장에서 영상으로 미사가 봉헌되었다. 그렇게 1만 명이 좁은 광장에 서서 침묵 속에 그분을 기렸다. 1987년 이후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명동성당 경내에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87년 이후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희망과 신뢰가 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것도 보았다. 나는 바람이 자고 날씨가 조금만 더 따뜻해지기를 기도했다.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였다.

성당 안에는 엄숙하고 경건한 침묵이 가득 차 있었다. 눈물조차 그분이 가시는 데 방해가 될까 숨을 죽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고 거행된 고별식에서 강우일 주교의 추모사를 시작으로 울음보들은 터지고 말았다.

“마지막에는 7개월을 병석에 누워계셨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먹지도 못하시고 배설도 제대로 하시지 못했으며 당신께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원하셨던 화장실 출입조차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것도 지킬 수 없던 그 상황에서조차 그러나 추기경님은 온화하셨고 ‘너무 과분한 은총을 받았다. 정말 감사드린다.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느님께 무릎을 꿇고 대체 추기경님께서 무슨 갚을 죄가 그리 많다고 저리 괴롭히십니까? 저분을 저리 벌을 주신다면 우리 같은 이들이 받을 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서 추기경님을 저 고통에서 해방시켜 달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서야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 의미를 이제 우리도 안다. 그분이 준 각막으로 두 사람이 눈을 떴다지만 실상 우리 모두가 그분으로부터 잃어버린 내면의 눈을 다시 받았다. 이 각박한 경제상황과 캄캄한 절망의 시대에 장기기증자가 30배 늘어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부가 늘어나고 있다. 빨리빨리로 유명한 우리 국민이 5분 동안 그분을 조문하기 위해 3시간 동안 찬 바람에 기꺼이 서 있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 차를 나르는 봉사자가 생겨나고 ‘노약자가 우선입니다’라는 팻말도 붙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난방비를 걱정하고 아이들 성적 때문에 소리를 지를지라도 적어도 이 닷새 동안 명동은 천국의 풍경 한 자락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우리들 안의 천국을 그분의 죽음이, 아니 죽음으로 완성된 삶이 일깨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난데없는 황사도 찬바람도 실은 이 뜨거운 열망을, 이 기적을 보여주기 위한 하느님의 적절한 무대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비로소 이 추위와 고통의 의미를 내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장지로 가는 길,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거리마다 사람들이 서 있었다. ‘추기경님 주님 안에 편히 쉬소서’ 하는 현수막도 보였다. 신갈 나들목에서 수지 거리에서 죽전역 사거리에서 용인 금호세차장 앞에서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여남은 명씩 모여 그렇게 운구차를 향해 기도하고 손을 흔들며 울었다.

가버린 줄 알았는데 다시 돌아와 뒤통수를 치는 매서운 추위도, 밤새 내린 눈도, 난데없이 날아온 황사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는 논리도, 똑똑한 놈들이 먼저 살아야 한다는 논리도, 통장 하나 가지지 못하고 스스로를 바보라고 여기며 살다 죽은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추운 한겨울 길거리에서 3시간을 줄 서 있다가 그들이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은 한 인간의 차가운 시신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고귀하다는 가치를 평생을 바쳐 실천한 한 인간에 대한 경외였고 스스로의 내면에 있는 그 가치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의 이름은 따스함, 그의 이름은 가난, 혹은 사랑 그리하여 그의 이름은 희망이다. 우리는 그를 보내고 그것을 얻었다.

김수환 추기경님.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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