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글로벌 힘의 재편 제2세계가 움직인다

  • 입력 2009년 1월 17일 02시 58분


◇제 2 세계/파라그 카나 지음·이무열 옮김/664쪽·2만8000원·에코의서재

자국이익 겨냥 신흥강국들

세계 성장 새로운 엔진 부상

美-EU-中세력판도 변수로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대륙이 아닙니다. 여긴 열두 나라가 서로 어우러져 사는 땅이며, 이곳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바로 우리입니다.”(브라질의 한 외교관)

“미국과 유럽은 우리의 후견인 역할을 해 봐야 그다지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든 그들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고도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요.”(터키의 한 지식인)

저자가 만난 ‘제2세계’ 사람들은 기존의 국제질서 패러다임과는 다른 논리로 저자에게 자신들의 나라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브라질은 냉전기에 무조건 미국과 공조를 취하던 자세에서 벗어났으며, 터키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가깝던 태도를 버리고 유럽연합(EU)으로도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한 국제관계 전문가. 그는 “미국, 중국, EU라는 빅3가 21세기 리더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런 현실에서 앞으로 세계 질서의 패권은 제2세계에 달려 있다는 게 그의 생각.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인 동시에 세계 성장의 새로운 엔진인 제2세계 국가들이 어떤 슈퍼파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세계 질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원래 ‘제2세계’는 냉전 시절 사회주의권을 가리키던 말이다. 그러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유명무실한 용어가 됐는데 저자는 이를 강대국인 제1세계와 후진국인 제3세계 사이에 놓인 국가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했다. 그는 50여 개국을 다니며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한 언론계 거물은 저자에게 “우린 더는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편을 믿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자원 쟁탈을 위해 각국의 정치가와 사업가들이 24시간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국의 이익’에 달렸다는 얘기다.

터키는 이런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친미 성향이 강하던 터키는 2003년 이라크전쟁이 터지자 무게중심을 급격히 유럽 쪽으로 기울였다. 터키 의회는 군사기지를 제공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미국이 터키의 군사력에 의존하던 시대착오적 습관에 갇혀 있는 동안 터키의 문민 지도자들은 EU의 민주적 책임을 벤치마킹했다.

중앙아시아는 옛날부터 주변 열강의 각축전인 ‘그레이트 게임’이 벌어졌던 곳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석유,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존재로 인해 ‘뉴 그레이트 게임’이 펼쳐지는 중이다.

제국들의 힘에 이리저리 휘둘렸던 중앙아시아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다. 카자흐스탄이 대표적이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동서를 넘나들며 여러 방면으로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중국에 복속되는 것도, 미국의 간섭이나 군사기지의 확장도 원치 않는다.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렸던 라틴 아메리카도 미국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면서 동서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남미 국가들을 자신의 이웃으로 자부해 왔던 미국은 점차 영향력을 잃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이었던 브라질은 중국이 부상하자 지체 없이 중국과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었다. 브라질은 철광석과 목재, 쇠고기 등을 중국에 보내고 중국은 브라질의 수력발전용 댐, 철강 공장, 신발 공장에 투자한다.

빅3의 최대 격전장인 중동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최고 산유국이면서 그동안 미국의 입김을 강하게 받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늘날 유럽과 아시아를 끌어들이며 서로 경쟁을 시키고 있다. 그 경쟁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제2세계의 미래는 빅3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고, 빅3의 미래는 제2세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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