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이 연구]<9>최치원에 빠진 최영성 교수

  • 입력 2008년 12월 1일 02시 59분


이훈구 기자
이훈구 기자
최영성(48·사진) 국립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1985년 9월의 일을 잊지 못한다. 한문학을 배우러 국민대 대학원에 진학한 그를 김도련 교수가 부르더니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최치원이 쓴 4개의 비문)’을 건넸다. “자네는 차분하고 진득하니 ‘사산비명’의 역주 작업을 해 보게.”

최 교수는 최치원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고 ‘사산비명’도 한국 고대 사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는 “교수님의 권유로 역주 작업을 했지만 그게 최치원을 연구하는 계기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사산비명’의 역주에 매달린 끝에 1987년 ‘주해 사산비명’을 펴냈다.

이후 최치원에 매료된 최 교수는 최치원의 저작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최치원의 철학 사상 연구’로 성균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유교 사상을 두루 살피면서도 최치원에 대해 수십 편의 논문을 쓰고 ‘역주 최치원 전집’ ‘최치원의 사상 연구’ ‘고운 사상의 맥’ 등을 펴냈다.

“최치원은 유교 사상에 입각해 불교 및 도선(道仙) 사상을 섭렵한 사상가입니다. 그런데 성리학 시대인 조선시대에 퇴계 이황이 최치원을 ‘부처에게 아첨했던 사람’이라고 공격할 정도로 반유교적인 사상가로 치부됐습니다.”

최치원은 또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사대모화(事大慕華)의 화신’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최 교수는 “한국 철학계는 그런 인식의 연장선에 있어 최치원의 사상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며 “최근 여러 연구가 나오면서 평가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치원의 사상은 현대 한국인들도 본받을 게 많아 여러 분야에 걸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최 교수의 생각이다.

“최치원은 이른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인문의 국제적 흐름을 살폈습니다. 신라로 돌아온 뒤 중국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 한국 고유의 사상을 밝히는 연구에 몰두했죠.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 본받을 만한 인간상입니다.”

최 교수는 최치원의 사상 전반에 깔려 있는 ‘화(和)’ 사상에도 주목했다. 그는 “유교 불교 도교의 화합, 외국 문물과 한국 전통의 조화를 중시한 최치원의 사상은 다문화, 다원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되새겨볼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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