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반갑구나… ‘이 땅의 맨 얼굴’

  • 입력 2008년 8월 23일 03시 02분


딱히 어디라 할 것도 없다. 촌부의 웃음도, 담장에 흐드러진 꽃잎도 마음속 뭉쳐뒀던 실타래를 풀어낸다. 그곳의 밤은 별빛이 찬란하리라, 그곳의 바람은 풀 향기가 물씬하리라. 이번 한가위에는 그 골목, 그 어귀에서 어린 시절 동무를 만나고 싶다. 사진 제공 문학동네
딱히 어디라 할 것도 없다. 촌부의 웃음도, 담장에 흐드러진 꽃잎도 마음속 뭉쳐뒀던 실타래를 풀어낸다. 그곳의 밤은 별빛이 찬란하리라, 그곳의 바람은 풀 향기가 물씬하리라. 이번 한가위에는 그 골목, 그 어귀에서 어린 시절 동무를 만나고 싶다. 사진 제공 문학동네
◇ 나의 도시, 당신의 풍경/임재천, 김경범 지음/424쪽·1만9500원·문학동네

인간은 어디선가 나고, 어딘가에서 산다. 어울리고 흩어지고 만나고 헤어진다. 다가올 추석에 돌아갈 고향이건 현재 살고 있는 터전이건. 시골이나 도시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모두 도시에서 도시와 산다.

“이른바 도시란 수많은 좋은 것들을 내 근처에 두는 방식을 말하는 듯하다. 바로 점유이다. 점유란 수많은 좋은 것들을 내 근처에 두는 방식이다.”(중국작가 한사오궁)

소설가 강석경 씨가 전한 한사오궁(韓少功)의 말이다. 마음을 차지한 시간 그리고 공간. 누군가는 추억이라, 누구는 탯줄이라고 부르는 그런 곳이 도시인 셈이다. 책에 실린 187장의 사진은 “더께더께 쌓인 시간의 냄새”(이하석 시인)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나의 도시, 당신의 풍경’은 기획이 독특하다. 사진가 임재천 씨와 북 디자이너 김경범 씨가 공동 저자다. 답답한 시절 인연을 맺었던 둘은 몇 순배 술잔을 나누다 함께 책을 내기로 약속했다. 에필로그에서 밝혔듯 “디자이너가 저자로 이름 올리긴 애매하지만” 서로의 재능을 알아본 의기투합이었다.

여기에 출판사의 도움으로 스무 명의 필진이 함께했다. 소설가 김연수 조경란, 시인 강정 곽재구…. 서울 부산 나주 통영 등 그네들 혹은 우리네 시공간인 도시의 풍경을 돌림노래로 이어간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스무고개마냥 도시들을 넘고 넘을 수 있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서울 편에서 ‘우주심(宇宙心)에 이끌려’ 안착한 서울 삼청동 자취 시절을 회고한다. 청와대 총리공관이 맞닿은 탓에 “모기조차 알 차원에서 죄다 진압되는” 동네는 김 씨에게 ‘세상에서 가장 좁은 우주’로 기억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조경란 씨에게 ‘광화문’은 첫사랑이자 자신을 작가로 키워낸 “첫 번째 도시이자 첫 번째 근대의 장소”였다.

명창들의 한 소절 한 가락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다. 소설가 한승원 씨는 자신의 소설 ‘동학제’ ‘다산’의 배경이 됐던 나주를 “강물에 어린 배꽃 그림자처럼 물 흐르듯 꽃 피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라고 소개한다. 전북 남원시 실상사 주지인 재연 스님은 남원을 세상사가 들고 나는 지리산 자락의 풍광으로 잡아낸다. 고향 인천을 격변이 너울 쳤던 한국 역사의 축소판으로 해석하는 김중식 시인이나 삼척과 동해, 강릉 지역을 ‘한반도의 맨체스터’로 표현하는 소설가 심상대 씨의 글도 상쾌하다.

이 책의 매력은 다른 듯 닮은 우리네 한반도의 숨결이 고스란하다는 데 있다. 저자의 사진과 작가들의 글은 꼭 어디라고 지명을 거론할 필요가 없다. 고장마다 고유성이 각별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묻어나는 사람 냄새와 풍광은 꽃향기 그윽한 어느 동구 밖을 떠올려도 무방하다. 춘천을 노래한 소설가 오정희 씨나 경주를 짚은 소설가 강석경 씨도 고향이 아닌 낯선 도시에 정착한 게 아닌가.

필자가 많고 저자는 사진작가이다 보니 글과 사진이 약간 마찰을 빚는 대목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나의 도시…’는 그것도 한가슴에 안는다. 우리의 도시는 과거에 멈춰선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마음의 풍경은 멈추지 않는다. 고향 길에 너풀거리는 느릅나무 잎처럼.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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