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길위에서 쓰라린 역사를 만나다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3분


◇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유재현 지음/310쪽·1만8000원·창비

◇ 제국의 뒷길을 걷다/김인숙 지음/280쪽·1만2000원·문학동네

이국 정취를 드러내는 가로수와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 해변가에서의 낮잠과 갖은 특산 요리들…. 여기 이 책들에서는 여행서에 기대하는 백과사전식 정보의 나열이나 ‘자유와 해방감’은 없다. 그 대신 또다시 부닥친 현실의 단단한 벽, 역사를 반추하는 서글픔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감을 연 여행자의 예민한 촉수와 작가의 상상력이 끌어내는 이들의 여행기는 색다르다.

소설 ‘구르는 돌’ ‘시하눅빌 스토리’의 유재현 작가는 ‘샬롬과 쌀람’에서 기행하는 국가로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택했다. 70여 일간 그의 여정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시작해, 서안의 행정도시 라말라, 요르단과 레바논으로 이어진다. 영국 BBC 앨런 존스턴 기자가 납치됐던 2007년 당시, 가자지구 방문도 망설이지 않는다.

저자는 이 지역의 뿌리 깊은 갈등과 반목의 분쟁사의 배경을 들여다본다. 특히 밸푸어 선언과 서방세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몰아낸 시온주의자들, 이스라엘의 군사문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이스라엘군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총탄과 폭격으로 황폐화된 가자지구의 도시를 둘러본다.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을 잃고, 내전으로 끔찍한 상황에 내몰린 그들 생활에 대한 묘사는 역사와 삶의 부조리를 되새김질하게 한다.

‘제국의 뒷길을 걷다’를 쓴 소설가 김인숙 씨는 여러 차례 중국을 오갔고 2006년엔 1년 반 정도 베이징에서 지내기도 했다. 이 글에는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고궁에 대한 역사적 사건과 문학적 상상력이 버무려져 있다.

쯔진청(紫禁城) 쿤닝궁(坤寧宮)에서 마지막 황제 푸이의 황후인 완룽의 비극적 생애를 반추하고, 이허위안(이和園)에서 천하를 호령했던 여장부 서태후의 일생을 엿본다. 고궁을 거닐 때마다 이곳을 거쳐 간 시대의 영웅들이 하나씩 호명된다. 작가가 풀어내는 그들의 삶은 불쑥 떠오르는 듯하다가 이내 바스러진다. 고궁 곳곳에 묻어 있는 역사의 뒷이야기들이 애잔한 여운을 남긴다.

두 책 모두 하나의 주제를 놓고 천착하고 비판하고 상상하며 공을 들인 여행기다. 작가들이 여행지에서 보여주는 통찰과 촘촘한 사색의 깊이를 함께 체험할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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