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행복은 불안을 증식하는가… ‘행복의 역사’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3분


◇ 행복의 역사/대린 맥마흔 지음·윤인숙 옮김/712쪽·3만 원·살림

행복에 대해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행복이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그 무엇이고 상황에 따라 다르므로 행복을 연구하는 것은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이마누엘 칸트는 “행복의 개념은 아주 불명확한 것이어서 모두 행복을 얻고자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누구도 명확하고 일관되게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두 학자의 말을 책의 앞부분에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관적인 것,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궁금증을 품는다. “인류가 언제나 이렇게 생각해 온 것일까. 행복은 보편적인가. 시공을 아우르는 특별한 역사를 갖는가.”

저자는 이런 궁금증을 바탕으로 행복의 계보를 추적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앞서 우선 한 가지 명심할 대목.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이 책에서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철학 문학 음악 역사 건축 미술 등 온갖 영역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박식함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게 만만치 않다. 이 책이 ‘행복’의 역사를 다룬 책인지 ‘행복’을 화두로 서구 지성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행복의 역사’와 직접 연관이 높은 대목들을 추리면 그리스시대의 행복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그리스시대의 인간에겐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없었다. 행복을 통제할 권리는 오직 신들이 쥐고 있을 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하듯 행복한 삶이란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것’이었다.

로마시대 사람들은 행복을 세속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폼페이의 빵집 벽에 걸려 있던 ‘이곳에 행복이 거주하도다’라는 내용의 표지판으로 남근(男根)상이 함께 새겨져 있다. 로마인들은 남근상을 ‘파시눔(fascinum)’으로 불렀는데 이는 번영, 권력과 더불어 행복과 맥락이 닿는 행운의 상징이었다.

초기 기독교 시절 행복은 다시 인간의 영역을 떠나 신의 손으로 간다. 기독교 철학의 선구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진정한 행복, 그것은 우리의 현세에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못 박았다. 기독교에서 볼 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스스로 행복을 유기한 자’이며 어떻게 하면 집(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존재다.

계몽시대인 18세기 유럽인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음식을 즐기며 현세의 삶을 누렸다. 마침 해외 무역이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 생활 기반이 갖춰졌다. 사람들은 육체를 즐겁게 하는 행위에 대해 “신의 의지에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의도한 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행복’의 개념은 바로 이때 탄생했다고 규정한다.

최근에는 개인의 행복은 유전자에 좌우된다는 해석도 등장했다. 과학자들은 더 나아가 인간의 DNA 속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기 위한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찾게 되면 ‘행복 유전자 조작’을 통해 누구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수천 년 서양사에 나타난 행복의 자취를 추적하지만 행복의 보편적 의미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행복은 때론 고통스러운 희생을 감내하고 얻게 되는 값진 대가가 아닐까” “행복해야 한다는 현대인의 지상 과제는 그 자체로 불만의 형태를 낳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뿐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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