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수요일 밤이면‘큐레이터와의 대화’

  • 입력 2008년 5월 14일 02시 59분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린 ‘큐레이터와의 대화’. 관람객 40여 명은 김영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왼쪽)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분청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윤완준 기자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린 ‘큐레이터와의 대화’. 관람객 40여 명은 김영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왼쪽)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분청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윤완준 기자
문화재 도사들 생생 해설에 탄성

전문가 뺨치는 송곳 질문엔 진땀

《어스름 짙어진 7일 오후 6시 반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정문. 전시실 건물까지 이어지는 길은 인적이 없어 고요했다. 얼핏 저녁이라 박물관이 문을 닫았나 생각이 들 정도. 전시실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만이 아직 박물관이 문을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수, 토요일 오후 9시까지 개장하지만 인적 드문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니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평일 밤 박물관을 얼마나 찾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이날 이런 오해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한 곳은 전시실 3층 분청사기실. 관람객 40여 명이 한데 보여 누군가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수첩에 내용을 깨알같이 적는 관람객부터 유물을 다시 눈여겨보는 관람객까지 분청사기실이 가득 찼다. 20대 대학생부터 40대 주부, 60대 퇴직 남성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고요한 전시실 밖 풍경과 대비돼 더 활기차게 느껴진다.

“이 추상화된 무늬를 보세요. 피카소 그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으세요? 이 분청사기 제기(祭器)는 예술성과 토속성이 어우러져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명품입니다.”

관람객들의 시선이 유물에 쏠린다. 원통 모양 몸체에 다리 세 개 붙은 ‘분청사기 작(爵·고대 중국에서 쓰던 술잔) 모양 제기’다.

“직선과 원을 이리저리 그어 구름, 꽃, 사람의 형상을 표현한 기하학적인 무늬가 한 폭의 추상화를 떠올리게 하죠.” 김영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수요일 오후 6시 반∼8시 박물관 전시실 곳곳에서 열리는 ‘큐레이터와의 대화’ 현장. 2년째를 맞은 이 프로그램은 일반 관람객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박물관 학예연구직들의 유물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매주 찾는 마니아층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 학예연구실장 등 간부들도 열강… 뜨거운 반응

유물을 전시한 전문가들이 직접 설명하기 때문에 개론적 설명에서 벗어나 유물과 관련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호평이 이어지자 김성구 학예연구실장, 최응천 아시아부장, 송의정 고고부장 등 간부급 큐레이터들도 강사로 나서고 있다. 강사 1명당 30분씩 강의한다.

이날 오후 6시 반부터 7시까지 예정된 김 실장의 분청사기 설명이 끝날 즈음,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후 7시부터 국보 301호 전남 구례군 화엄사 괘불(1653년)에 대한 설명이 있다는 것. 관람객들 사이에 자리를 옮겨야 할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2층 불교회화실에서 시작된 화엄사 괘불 설명은 박물관 미술부 배영일 학예연구사가 맡았다. 화엄사 괘불은 높이 12m에 이르는 대형 불화로, 사찰을 떠나 처음 전시되는 유물. 괘불 앞 관람객 40여 명이 모여들어 옹기종기 앉았다.

“부처의 백호(白毫·두 눈썹 사이의 빛나는 터럭)에서 다섯 방향으로 빛이 발하는 게 보이시죠? 영취산(靈鷲山)에서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걸작입니다. 영산회(靈山會)를 표현한 그림 가운데 가장 큰 괘불이에요.”

배 학예연구사는 괘불에 등장하는 석가모니, 보살, 제자들, 사천왕의 특징을 일일이 소개했다. 30여 분 뒤 배 학예연구사가 다른 전시실에서 ‘큐레이터와의 대화’가 이어진다며 설명을 마쳤지만 관람객들은 떠나지 않고 질문을 쏟아냈다.

“이 그림이 국내에서 가장 큰 괘불인가요?” “화엄사에서 어떻게 가져왔나요?” “이렇게 큰 괘불을 어떻게 올리나요?”

오후 7시 반부터는 고고관과 역사관에서 ‘청동기시대의 토기’ ‘조선시대의 어보(국새)와 어압(임금 자필 도장)’을 주제로 학예연구직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 강의 2년째… 관객 30%가 매주 찾는 마니아

이수미 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관은 “입소문이 나면서 설명을 듣는 관람객 가운데 매주 찾아오는 마니아층이 3분의 1이나 될 정도”라며 “이분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던지기 때문에 학예연구직들도 긴장하고 준비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관람객 조현주(48·여·관광가이드) 씨는 “혼자 관람할 때보다 훨씬 깊이 볼 수 있다”고 말했고 오혜영(20·대학생) 씨는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동훈(63·퇴직) 씨는 “평소 볼 수 없는 전문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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