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시장경제 그늘 그린 中현대소설 13선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만사형통/톄닝, 모옌 외 지음·박재우 외 옮김/544쪽·1만4000원·민음사

‘솔루션 세럼.’

엄지손가락만 한 병에 들었는데 한 해 농사를 지어도 사기 힘든 475위안이나 하는 물건. 이 물건은 무엇인가?

간쑤 성 서부 시골마을에 사는 왕차이의 아들은 어느 날 학교에서 가계부 한 권을 들고 온다. 도시에 사는 쯔칭이 기부한 책에 섞여 들어온 가계부다. 그 안에 적힌 ‘솔루션 세럼’(영양과 수분을 공급해 주는 화장품)이란 생전 처음 보는 단어 때문에 그들은 고민에 빠진다. 왕차이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 매력적인 물건’에 매료되어 도시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단지, ‘솔루션 세럼’이 무엇인지 보고야 말겠다는 이유로.

중국 현대 소설선 ‘만사형통’에 실린 펀샤오칭의 소설 ‘가계부’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은 시장경제 유입에 따른 도농 간 부의 격차를 소비의 기록인 가계부를 매개로 재치 있게 드러냈다. 이 책은 ‘가계부’ 외에도 다채로운 주제의 단편선으로 현대 중국 소설 경향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책에 실린 13편의 작품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에 발표돼 루쉰문학상 등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이다.

성실한 극단 직원으로 20년간 지낸 라오쑹이 다리 수술을 위해 동료들이 어렵게 모금해 준 돈을 들고 달아나는 톄닝의 ‘도망’, 자매결연을 한 고관이 부유해지길 바란다며 선물한 미국산 양 한 쌍을 키우다 생활이 더 악화돼 가는 과정을 그린 샤톈민의 ‘한 쌍의 큰 양’ 등은 시장경제 지배력이 커짐에 따라 생겨나는 문제들을 짜임새 있고 유머 있게 다뤘다.

그 밖에도 하루키를 동경하는 도시 젊은이들의 소비 취향, 불륜 등 변화한 문화상을 짚어 낸 판샹리의 ‘맹물 야채국’, 단오 아침을 맞는 오누이의 하루를 통해 전통적 향촌 생활이 지닌 즐거움을 서정적으로 보여 주는 궈원빈의 ‘만사형통’ 등의 소설도 있다. 엄선된 작품들이라 하나씩 읽어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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