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2003년 美NBC 종군기자 아넷 해고

  • 입력 2008년 3월 31일 03시 00분


2003년 3월 31일 미국 NBC방송은 종군기자 피터 아넷을 해고했다. 아넷 기자의 해고는 그 자체로 뉴스가 됐다. 그는 종군기자의 ‘전설’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보도는 나의 인생”이라고 말하는 아넷은 전장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1960년 라오스의 조그만 영자신문사에서 출발한 그는 그해 8월 라오스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모든 통신이 두절되자 메콩 강을 헤엄쳐 내전 소식을 전했다.

이를 계기로 AP통신에 스카우트돼 베트남 특파원이 됐다. 그는 1965년 미국이 베트남을 공격할 때부터 1975년 베트남전이 막을 내릴 때까지 전쟁 참상을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1991년 걸프전쟁은 아넷을 세계적인 스타 기자로 만들었다. 총성이 오가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혼자 남아 전쟁을 실황 보도한 그를 전 세계가 주목했다.

2003년에도 그는 바그다드에서 NBC 기자로 이라크전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런 스타 기자를 쫓아냈으니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해고 사유는 전시 중의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NBC는 성명에서 “아넷이 국가의 통제를 받는 이라크 TV와 그것도 전쟁 중에 인터뷰를 한 것은 잘못됐다”며 “전시에 부적절한 행동을 한 아넷은 더는 NBC를 위해 보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넷이 이라크 TV와 인터뷰를 한 게 문제가 된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의 전쟁 계획이 이라크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미국 내에서 반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 한마디가 파문을 일으켰고 미국은 이적 행위 논란으로 들썩였다.

NBC에서 쫓겨난 아넷은 하루 만에 영국 데일리미러에 고용됐다.

이 신문은 “진실을 계속 보도할 수 있도록 ‘전설적 종군기자’를 고용했다”는 1면 머리기사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기자정신과 국익이라는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거졌고, 그 중심에 아넷이 있었다. 아넷은 한국에서도 ‘전쟁보도의 진실과 국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2003년 9월 한국언론재단의 초청을 받은 그는 “미국 관료들이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언론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대중의 알 권리에 대한 위협이자 언론의 전문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언론인의 최대 무기는 사실(fact)”이라고 강조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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