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비루한 삶의 모습 애틋이 껴안은 11개 감성 단편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봄빛/정지아 지음/248쪽·9800원·창비

정지아(43·사진) 씨의 사람에 대한 애정은 깊고 따뜻하다. 어느 작가인들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사람으로 인해 구차해지고 쓸쓸해질 법한 상황에서 따뜻한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정 씨의 솜씨는 그 애정의 깊이와 온도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음을 일러준다.

새 소설집 ‘봄빛’에는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풍경’을 비롯해 11편의 단편이 실렸다. 2005∼2007년 발표할 때 문단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노쇠한 사람들에 대한 정겨운 시선이 무엇보다 눈에 띈다. 표제작 봄빛은 고향을 찾은 아들이 본 부모 이야기다.

기가 드세던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눈이 흐릿하고, 그런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며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른다. 걱정이 돼서 내려온 아들의 눈엔, 아들 기를 팍 꺾으려던 아버지의 변화도 심란하지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 충격적이다.

자식이라는 십자가를 져 온 부모를 이제는 맡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는 아들의 모습에, 작가는 엄청난 무게감을 지우지 않는다. 부모의 말다툼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면서 작가는 아들이 ‘부모에게 받은 것 돌려주기’를 제철 맞아 오는 봄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마음을 애틋하게, 그러나 무겁지 않게 하는 작가의 장기는 단편 ‘못’에서도 드러난다.

몸이 성치 않은 건우 씨는 여든을 넘긴 작은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 평생 조카 뒷바라지만 해 온 게 한탄스러운 작은어머니. 건우 씨가 모은 돈을 욕심내지만, 시집 간 누이에게서 돈을 지키라는 말을 들은 건우 씨는 꽉 움켜쥐고 놓질 않는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러면서 정들고 함께 늙어간다는 공감대를 나누는 모습에 이르면 웃음이 나오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개인의 아픔과 분단 역사의 상처를 잇는 작가 특유의 작품세계는, 여수 14연대를 따라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이야기인 ‘풍경’이나 빨치산 남편을 따라 산에 오른 아낙의 넋두리인 ‘세월’ 같은 단편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는 “기댄 바 없다고 생각했으나 돌이켜보니 무수한 것에 기대어 살아왔다”고 말한다. 구수한 전라도 입말로 가득한, 인간에 대한 깊은 정이 스민 작품 한 편 한 편에 작가는 그 고백을 형상화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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