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결혼 첫날밤에 맞닥뜨린 성과 사랑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체실 비치에서/이언 매큐언 지음·우달임 옮김/200쪽·9500원·문학동네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자인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60). 그의 2007년 신작 ‘체실 비치에서’는 “과연 매큐언”이라는 말이 나올 만한 작품이다. 가뿐한 분량에 내용도 단순하지만 흡입력이 대단하다.

때는 1962년 여름. 선남선녀가 결혼식을 올렸다. 런던대를 졸업한 똑똑한 청년 에드워드와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 20대 초반의 젊은 부부는 영국 남부의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왔다.

시간적 배경이 중요하다. 당시는 성(性)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시절. 두 사람 역시 순결을 지켜 왔고 첫날밤을 목전에 두고 있다.

어톤먼트의 원작 ‘속죄’가 그랬듯 매큐언이 ‘체실 비치에서’를 구성하는 방식은 낯설고도 충격적이다.

이 소설은 체실 비치에 와서 다음 날 체실 비치를 떠나기까지의 이야기가 전체 200쪽 중 187쪽을 차지한다. 나머지 13쪽은 그 후 에드워드가 보낸 삶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하루가 채 되지 않는 시간을, 소설 전체로 따져보면 기형적일 만큼 길게 썼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남자는 첫 섹스에서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한다. 여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섹스를 혐오한다. 작가는 두 사람의 밀고 당기기를, 세밀한 몸짓에 대한 묘사와 과거에 대한 회상을 섞어가면서 보여준다. 때로는 긴장되고 때로는 맥이 풀리고, 또 때로는 분노가 치미는 감정이 순간순간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 소설의 일관된 분위기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후회다. 작가는 에드워드의 남은 생을 건조하게 묘사함으로써 체실 비치에서의 사랑의 순간을 역설적으로 빛나게 한다.

해외 언론은 ‘영문학에 이젠 이언 매큐언을 능가하는 작가는 없다’(워싱턴포스트), ‘섬세한 세공과 지성으로 빛나는 문장’(뉴욕타임스) 등의 찬사를 보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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