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불경-성서 강의 이상한가요”

  • 입력 2008년 3월 13일 03시 03분


“특정 종교의 가르침으로만 해석되어온 경전은 이제 그 종교의 틀을 벗어나야 합니다. 경전은 일상 속의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경전과 선’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종교와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박영대 기자
“특정 종교의 가르침으로만 해석되어온 경전은 이제 그 종교의 틀을 벗어나야 합니다. 경전은 일상 속의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경전과 선’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종교와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박영대 기자
“‘종교가 뭐냐’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당황스럽습니다. 인간을 종교라는 껍데기에 가둬두려는 말 같아요. 껍데기를 치우면 여러 종교의 근본이 서로 닿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라는 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세례 받은 기독교인이지만 전남 순천시 송광사 현전 스님 아래서 ‘무(無)’를 화두 삼아 참선에 정진해 여산(如山)이란 법명을 얻은 사람. ‘경전과 선(禪)’을 주제로 금강경 화엄경 등 불교 경전과 기독교 경전인 신약성경에 담긴 지혜를 보통 사람들에게 강의(8월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정신과학문화원)하는 사람. 그는 세포면역학을 전공한 과학자, 우희종(50)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다.

8일 시작된 그의 강의에는 30, 40대 주부부터 은퇴한 50대 남성, 20대 회사원, 전직 승려까지 다양한 수강생이 모였다.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인 이애주 서울대 교수도 있었다. 우 교수가 물었다

“불교에서 살생하지 말라고 하죠. 왜 안 될까요?”

“….”

“생명이라고 무조건 살려야 하는 건 고정관념입니다. 생사를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강의 뒤 수강생들은 “경전이라고 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말들을 곱씹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 교수의 강의 목표다. “경전의 의미를 교조적으로 가르치기보다 경전의 지혜가 일상 속에서 참된 자아를 깨닫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신약성경 누가복음 14장 26절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 자신과 가족에게만 향한 마음을 타인에게 돌려보라는 것. 불교에서는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연기(緣起)로 불리는 이 관계, 너와 내가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보라는 조언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왜 과학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그는 생명공학 얘기를 꺼냈다.

“생명공학은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발현된 과학입니다. 그 자체야 나무랄 것 없지만 생(生)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지요. 삶과 죽음은 인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의 변화일 뿐인데 생명 연장 그 자체에만 집착한다면 나머지 다른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종교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는 반대로 종교가 맹목적인 도그마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의 합리성이 필요하다며 “인간 행복을 위해 과학과 종교는 상보적(相補的)”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이 과학자를 종교적 성찰로 이끌었을까.

“미국의 한 대학에서 조교수 생활을 할 때까지만 해도 ‘교과서적’인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1992년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누구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찾아오더군요.”

우 교수는 이런 깨달음을 나눔으로 실현하고자 한다. 지난해부터 조계종 중앙승가대학에서 생명·생태학을 강의하고 있는 것도, 종교 간 갈등의 치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기독교 불교 공동 학술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그런 생각에서 비롯됐다.

“삶의 불만족, 허무를 달래기 위해 많은 이가 종교를 찾습니다. 그 수단이 기도든 참선이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종교 그 자체를 위해 태어난 게 아닙니다. 종교를 찾을 때 궁극의 목표는 진정한 나를 찾는 성찰이 돼야 합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박영대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