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적 입체서 편안한 평면으로…하종현 화백 추상미술 반세기展

  • 입력 2008년 3월 4일 02시 59분


하종현 씨는 1970년대 실험적 작품부터 근년의 ‘접합’ 시리즈까지 자신의 추상미술 세계를 회고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사진 제공 가나아트갤러리
하종현 씨는 1970년대 실험적 작품부터 근년의 ‘접합’ 시리즈까지 자신의 추상미술 세계를 회고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사진 제공 가나아트갤러리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 전시 작품을 고르느라 애먹었지. 하하….”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하종현, 추상미술 반세기’ 전시장에서 만난 하종현(73) 씨.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작가로 인정받는 그의 목소리엔 활기가 넘쳤다.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농담처럼 툭 던진 한마디가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1층에 걸린 1970년대 평면 설치작품 10여 점은 오늘의 눈으로 봐도 신선하다. 전위예술을 이끌던 한국아방가르드협회 멤버였던 그가 철조망 스프링 나사 등을 이용해 만든 오브제 작업들. 당시 그는 ‘물성’을 주목한 실험적 작가로 높이 평가받았다.

“1970년대는 가장 아픈 시기였잖아요. 사회 상황을 예술로 승화해 깊은 의미를 담아내려 했던 작업이죠. 철조망 작업은 사람을 억압하고 가두는 아픔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2000년대 들어 입체적 설치에서 새로운 평면작업으로 넘어온다. 2층에 선보인 ‘접합’ 시리즈 30여 점은 칠순을 넘긴 그가 여전히 변화와 성장을 시도하는 현재진행형의 작가임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면서 색깔이 없어지고 형태는 단순화하는 것 같습니다. 미라처럼 뼈만 남기는 셈이죠.”

그는 고정관념을 뒤집고 캔버스의 뒷면을 발견했다. 올 굵은 마대의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내면 성근 틈 사이로 물감이 빠져나온다. 캔버스 위로 빠져나온 물감 위에 형태를 그려 넣는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힘을 조절해 화면을 통제해야 한다. 그는 “마대와 물감, 나의 행위가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화면을 만드는 과정”이라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물감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편안하고 고요한 동양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캔버스에 드러난 형태는 붓글씨의 획이나 잔물결, 가마니의 무늬처럼도 보인다. “화면의 황토색과 흰색, 오래된 기왓장 같은 청색 등 내 주변에서 모은 토속적 한국적 색감이죠.” ‘뿌리를 자기 땅에 두고 작업하는 작가’라는 해외에서의 평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홍익대 교수를 지낸 그는 정년퇴직금으로 하종현미술상을 제정했다. 지난달 29일 전시 개막식에선 6, 7회 수상자 김아타, 조숙진 씨에 대한 시상식이 열렸다. 이 전시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초대전이 열린다. 02-720-102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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