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한국철학, 세계에 알린다

  • 입력 2008년 1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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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의 진면목을 세계 학계에 알린다.”

올해 7월 30일∼8월 5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제22차 세계철학대회. 동양에서 최초로 열리는 세계철학대회이자 올 한 해 국내 학계의 최대 행사가 될 이번 대회를 앞두고 국내 철학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를 전체주제로 잡은 이번 대회에는 프랑스의 알랭 바디우,독일의 페터 슬로터다이크오와 빗토리오 회슬레, 영국의 티모시 윌리엄스, 미국의 쥬디스 버틀러 등 세계적 철학자들이 참석한다.

이번 철학대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동양 철학이 세계철학대회의 정규 분과로 포함됐다는 점. 기본적인 발표가 이뤄지는 일반 분과가 종전 51개에서 올해 대회부터 불교, 유교, 도가 철학을 포함한 54개 분과로 늘어난다.

3000여 명의 철학자가 참석하는 세계철학대회 공식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5개 언어다. 논문 발표와 토론이 이들 언어 중 하나로 이뤄지는데 이번 대회에선 중국어와 한국어가 포함돼 7개로 늘어난다. 전체 강연과 심포지엄에 제공되는 통역도 영어 프랑스어 외에 중국어 한국어가 더해진다. 세계철학대회의 한국 개최를 통해 동양 철학의 위상만 높아지는 게 아니다. 세계 철학의 변방이었던 한국 철학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와 정치 경제적 도약을 준비한다면 한국은 세계철학대회를 통해 문화적 도약을 펼칠 수 있는 셈이다.

우선 심포지엄 5개 주제 중 하나로 ‘한국의 철학’이 포함됐다.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김여수 경희대 교수, 이태수 서울대 교수, 이광세 미국 켄트주립대 교수, 승계호 미국 텍사스대 교수 등 5명의 발표자가 모두 한국인이다. 아직 주제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부는 청사진이 그려진 상태다.

이태수 교수는 19세기 말 개화기∼21세기 서양 철학이 한국에서 어떻게 수용됐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와 한계에 봉착했는지를 소개한다.

“유학을 배경으로 서양 철학을 수용했던 한국적 전통이 일제강점기 독일 철학 중심의 일본 내 서양 철학이 수입되면서 그 맥이 끊겼고, 광복 이후엔 분단과 냉전 상황으로 인해 다시 서양 철학 중 일부만 이해되는 편향이 발생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20여 년간은 분석철학 위주의 미국 철학이 강세를 보였고 1990년대 이후 프랑스 철학의 수용은 특정 인물 위주로 편식된 측면이 있습니다.”

발표 주제를 정리하고 있는 김여수 교수는 “세계 문명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는 한국 철학이 어떻게 특수성을 극복하고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론(試論)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광세 교수는 타협이나 절충이 아니라 여러 사상의 장점을 다원주의적으로 통합하려는 동양의 중도(中道)사상이 한국 철학에서 어떻게 접목됐는지를 동서 비교철학의 관점에서 조명할 예정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이들 발표자가 서양 철학 또는 비교철학 전공자여서 정통 한국 철학 소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회(의장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특별세션 형식으로 한국 대표 철학자들의 사상을 소개할 예정이다.

우선 조선조 유학을 대표하는 4대 사상가로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다산 정약용을 선정해 ‘궁극적 관심과 궁극적 실재(Ultimate Concern and Ultimate Reality)’라는 주제로 이들의 사상을 비교 분석하는 특별 세션을 준비 중이다. 기획을 맡은 곽신환 숭실대 교수는 “퇴계학과 율곡학이 상대적으로 이론에 천착했다면 우암학과 다산학은 현실적 실천의 문제로 맞대결을 펼쳤다”며 “종교와 철학이 맞물려 궁극적인 문제로 파고들었던 그들의 사상적 편차를 풀어내겠다”고 말했다.

인물 중심이 아니라 지역 중심의 사상을 소개하는 특별세션도 준비 중이다. 경남 진주를 중심으로 남명 조식의 학통을 계승한 남명학파, 경북 성주를 중심으로 한강 정구의 학맥을 잇는 한강학파, 하곡 정제두를 중심으로 독자적 양명학의 전통을 이어 간 강화학파 등이 그 후보다. 기획을 맡은 김석수 경북대 교수는 “퇴계나 율곡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이 덜 이뤄진 한국 사상을 재발견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근현대 사상가로서는 다석 유영모와 씨ㅱ 함석헌이 가장 먼저 선택됐다. ‘우리 말과 글로 철학한 최초의 근현대 사상가’로서, 사제 간인 두 사람의 사상은 초청 세션으로 독립돼 발표가 이뤄진다. 씨ㅱ사상연구소(소장 박재순)가 주재하는 이 발표에는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이기상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 등 20여 명이 참가한다. 박 소장은 “다석과 씨ㅱ의 사상은 동서 문명의 만남의 과정에서 형성된 독자적 철학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 소개될 한국 철학의 콘텐츠는 2월 말경 확정된다. 한국 철학의 위상을 높이고 그 의미와 가치를 세계 학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더 많은 철학자의 동참이 절실한 때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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