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 변신익선?

  • 입력 2007년 12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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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관 TV 모니터의 노후화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어쩌면 5, 6년 안에 브라운관 TV 모니터를 모두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로 교체할 것인지, 아니면 브라운관 TV 모니터의 케이스는 그대로 두고 내부의 전기회로 장치를 바꿀 것인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 전시작인 백남준의 초대형 비디오아트 ‘다다익선(多多益善)’의 보수 작업이 한창인 요즘. 이 작품의 장기적 유지 관리 방안을 놓고 이런 고민이 시작됐다.

‘다다익선’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브라운관 흑백 TV 모니터 1003개를 탑 형식으로 쌓아 올려 만든 작품. 높이 18.5m, 폭 11m, 무게 16t.

이 작품의 유지 관리 문제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흐르면 고장 날 수밖에 없는 TV 모니터로 작품이 만들어졌기 때문. 게다가 브라운관 모니터는 더는 생산이 되지 않아 고장이 나도 장기적으로는 교체가 불가능하다.

모니터의 노후화가 계속되자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의 동의를 얻어 1003개 모니터를 모두 브라운관 컬러TV 모니터로 교체한 바 있다. 하지만 교체한 모니터도 시간이 흐르면서 빠른 속도로 노후화되고 있는 상황. 게다가 모니터 1003대에 연결된 각종 전선이 오래되고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화재 발생 우려마저 제기돼 이달 초부터 전면적인 해체 보수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16일 국립현대미술관은 기본적 전기 점검을 마치고 작품 주위로 비계를 설치해 놓았다(작은 사진). 주문한 부품들이 완성되는 내년 1월 초부터 본격적 해체 수리 및 부품 교체에 들어가 4월 말∼5월 초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보수작업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1988년 ‘다다익선’의 회로 설치 및 배선 등을 담당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전기엔지니어 안종현 씨의 말.

“브라운관 모니터를 계속 틀어놓다 보니 보통 TV보다 노후화가 훨씬 빠르고 고장도 잦습니다. 예비 모니터가 있다고 해도 5, 6년쯤 지나면 결국 브라운관 모니터를 LCD 모니터로 교체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적절한 유지 관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검토 가능한 유지 방안은 ①브라운관 모니터 내부의 복잡한 전자회로는 새로 교체하고 모니터 케이스는 지금 것을 유지하는 방법 ②아예 LCD 모니터로 모두 바꾸는 방법 등 두 가지.

①안은 원래의 외관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견해. 반면 ②안은 그 시대에 맞는 모니터로 교체할 수 있다는 전위적인 생각이다.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던 백남준의 예술철학에 부합된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절충안도 있다. ③브라운관 모니터가 고장 나더라도 원래의 ‘다다익선’을 그대로 보존하고 대신 LCD 모니터로 교체해 원 작품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방안이다.

이에 대한 국립현대미술관 김경운 학예연구사의 설명.

“백남준 선생은 원래 이 작품의 아이디어만 제공했습니다. 건축가 김원 씨가 구조물을 설계하는 등 제작 실무 작업은 다른 사람들이 맡았습니다. 백남준 선생은 ‘다다익선’의 외양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모니터를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 등에 관해 어떠한 가이드라인도 정해 놓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외양도 유지하고 기능도 그대로 살려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건 백남준 선생의 아이디어를 보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유지 보수 관리에 있어 전통적인 그림이나 조각보다 좀 더 복잡하고 민감한 비디오아트. 5, 6년 뒤 ‘다다익선’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흥미로운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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