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대선 D-70… 국민축제 띄울 시점에 ‘정치 직무유기’

  • 입력 2007년 10월 1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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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안 뜨네”7일 열린 한 정당의 경선에는 빈자리가 눈에 띄게 많아 ‘썰렁한’ 경선이 되고 말았다. 이종승 기자
“분위기 안 뜨네”
7일 열린 한 정당의 경선에는 빈자리가 눈에 띄게 많아 ‘썰렁한’ 경선이 되고 말았다. 이종승 기자
《10일로 제17대 대선(12월 19일)이 70일, 후보등록 개시일이 4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 대선 주자 간의 대결이 실종된 ‘이상한 대선’이 진행되고 있다. 선거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대선 정국 파행의 가장 큰 원인은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범여권 후보 결정이 늦어짐에 따라 후보들의 정책대결 기간이 짧아진 만큼 유권자의 선택에 지역주의나 인상 평가 등 비합리적 요인이 개입하기 쉽게 됐다”고 말했다.》

▽혼란 거듭하는 범여권=대통합민주신당은 파행 끝에 가까스로 경선을 다시 정상화했지만 벌써부터 ‘경선 불복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등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경선 과정의 불법, 탈법행위가 드러나면서 오히려 정치혐오증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등 3명의 후보가 모두 불법·탈법선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누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더라도 정통성 시비에 휘말려 만신창이의 몸으로 ‘링’에 오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범여권의 파행적 경선 행태는 대선 정국 전반에 전례 없는 부작용을 불러오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당의 기본이 돼야 할 정책 노선조차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치적 정체성’도 현 정부의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승계하는 것인지를 놓고 대선 주자들 간 의견이 다를 정도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주자들이 공약의 일부를 제시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공약 검증이나 공약을 둘러싼 공방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범여권은 15일 대통합민주신당, 16일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출된 뒤 후보단일화를 계획하고 있다. 대선 후보자 등록일이 다음 달 25∼26일인 것을 감안하면 후보단일화 작업에 쓸 수 있는 시간은 겨우 한 달 남짓하다.

범여권은 후보단일화 대상으로 장외 후보인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까지 포함시키려 하고 있으나 문 전 사장이 자신으로 단일화할 것을 요구해 단일화가 ‘희망에 그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분당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후보단일화 작업을 추진할 내적 역량이 남아 있겠느냐는 것이다.

▽몸조심하는 한나라당=한나라당 선대위 관계자는 “이명박 후보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책과 조직 곳곳에서 주도권 싸움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사공이 너무 많아 의사 결정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등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나라당은 10일 중앙선대위 발대식에 이어 조만간 시도당 선대위 필승결의대회를 여는 등 대대적인 세몰이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 후보가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둘러싸고 당내에서 논란이 벌어지는 등 아직도 당 차원의 대선 공약을 최종 확정해 발표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상대 후보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약을 발표하면 집중 비판을 받을 것으로 우려해 공약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촬영 : 동아일보 사진부 이종승 기자

▽1997년, 2002년 대선 때는=1997년과 2002년 이맘때에는 주요 후보 간에 치열한 지지율 경쟁이 벌어졌다. 선거 막판 지지율이 뒤집히는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되기도 했다. 표차도 각각 39만 표(1997년)와 57만 표(2002년)에 불과했다.

1997년 15대 대선은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 제1 야당인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다.

여당 후보로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이회창 후보가 장남의 병역 면제 의혹에 대한 야당의 ‘병풍(兵風) 공세’에 시달리며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대선 후보 경선에서 2위를 했던 이인제 경기지사가 그해 8월 탈당했다. 3파전으로 치러진 대선에서 김 후보가 근소한 차로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대권을 따냈다.

2002년 대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대선에 재도전하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가 각축을 벌였다.

민주당 경선에서 극적으로 대선 후보가 된 노 후보는 지지율 3위에 머물며 선거 막판까지 고전했으나 대선을 20여 일 앞두고 정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해 판세를 뒤집었다.

▽“검증할 시간이 없다…유권자의 선택도 제한”=올해 대선에서는 범여권의 대선 후보 확정이 늦어지다 보니 후보의 인물, 정책, 도덕성에 관해 제대로 검증할 시간 자체가 부족하고 자연스레 대선 후보 간 비교도 거의 불가능해질 공산이 크다.

특히 범여권의 대선 후보는 집권구상을 제대로 할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국대 안순철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선 과정에서 필요한 후보의 도덕성과 정책 검증 중 후자가 더 걱정이다. 특히 대선에서 후보 정책은 결국 정치적 세력이나 정당의 정책인데 지금 대통합민주신당과 같은 이합집산 과정에서는 정책 검증 자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이 승패를 떠나 대선 후보 간 경쟁과 비교 검증이 완전히 실종되는 ‘왜곡된 선거’를 초래하고 동시에 국민의 선택권도 제한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숭실대 강원택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국민으로서는 불행한 상황이다. 자체 검증도 있지만 여야 경쟁을 통한 검증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나라당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인 서병수 의원은 “범여권의 대선 구도가 혼탁해지면서 국민적 관심이 점차 대선과 정치에서 멀어져 이 후보에 대한 지지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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