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남장해 겪어보니 “남자들, 불쌍한 늑대입디다”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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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일 남장체험/노라 빈센트 지음·공경희 옮김/332쪽·1만1000원·위즈덤하우스

한 레즈비언이 얼굴에 수염을 붙였다. 머리는 상고머리로 잘랐다. 네모 모양의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다. 가슴은 스포츠브라로 가렸다. ‘물렁물렁 조’라는 남장용 인공성기를 바지 속에 넣었다. ‘노라’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네드’라는 남자 이름으로 거리를 나섰다. 그러고는 1년 반 동안 남장여자로 살며 남자들과 어울렸다. 여자와 데이트도 해봤다. 스트립 클럽도 가봤다. 이 책에서 그는 처음엔 들킬까 걱정됐지만 점점 자신감이 붙었고 때로 짜릿한 스릴도 느꼈다고 회고한다. 성도착자나 복장도착자였을까. 아니다. 저자는 남자 노릇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자신이 여성의 몸에 갇힌 남자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저자는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찾아가 남자의 발성법까지 배우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남자는 누군가?’를 취재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현장에 뛰어든’ 저널리스트다. 남장여자를 소재로 말초적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취재란 목적을 위해 남자란 가면을 써야 했던 여성 저널리스트의 정체성 혼란과 고뇌가 드러난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보다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조직원이 된 경찰과 경찰 정보를 빼내기 위해 경찰이 된 조직원의 이야기 ‘무간도’가 생각난다.

남장을 한 채 길거리를 몇 번 활보하고 쓴 겉핥기 책이 아니다. 저자는 블루칼라 남성들의 볼링팀에 가입하고, 남자 친구들과 스트립 클럽을 경험한다. 남자로서 여자에게 ‘대시’도 해보고, 취직도 해본다. 남성들만의 심리치료집단에도 참가한다.

여자와는 다른 남성만의 연대감과 형제애를 느꼈다며 감동하다가도 아무리 친해도 사적인 이야기를 꺼리는 남자들의 벽을 실감한다. 남자들이 마약 먹듯 여자들을 취하는 모습에 모욕감을 느끼다가도 성욕을 해결하려 클럽에 목매는 남자들을 보며 남성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해 권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성적 권력의 핵심은 여자가 들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데이트하면서는 남성이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것보다 여성이 남성의 성격을 평가하는 게 더 강압적이라 느낀다. 현대적 남성상을 기대하면서 마초 기질의 가부장적 남성상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저자는 모든 남성은 가부장제에 젖어 있다고 생각한 극단적 페미니스트였다. 1년 반의 시간이 지난 다음 저자는 남성 역시 가부장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갑옷 속에 아무도 안 보길 바라는 발가벗은 몸을 숨긴 채 울고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1년 반의 남장생활로 얻은 깨달음을 섣불리 일반화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모든 남자는 늑대’라는 말로 상대의 성을 규정해 온 여성의 시각을 한 번쯤 곱씹을 기회가 되기엔 충분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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