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인터넷 글쓰기 닮아간다

  • 입력 2007년 8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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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우리 동네’가 인터넷소설?

황당한 얘기 같지만 최혜실(45·사진) 경희대 국문과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할 만하다. ‘다북쑥이나 한 전 베어뉘였더라면 밭마당귀에 모깃불이라도 놓고 나앉아 보련만’ 같은, 충청도 사투리를 그대로 옮긴 ‘우리 동네’의 몇 구절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문학적 성과와는 별개로, 대부분의 인터넷소설도 구어(口語)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는다. 이문구 소설 특유의 구술성은 인터넷 글쓰기의 특징이기도 하다.

새 평론집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한길사)에서 최혜실 교수는 우리 소설과 인터넷 말글이 ‘닮은꼴’이라고 말한다. 최 교수는 2000년 KAIST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광고 등 모든 콘텐츠에 적용되는 서사’로서의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 엄숙함과 경건함이 덧입혀진 한국문학과 가볍고 일회적인 인터넷 글쓰기가 비슷하다는 그의 주장은 도발적이다. 그렇지만 인터넷 시대에 블로그, 손수제작물(UCC)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문학에 대한 이런 분석은 의미 있다.

[도발성]

인터넷 글쓰기의 영향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더욱 뚜렷하다. ‘문학이라고 별수 있겠나. 내가 있었던 문학판은 진창이었고 나는 한 마리 개였죠’라는 김종광(36·사진) 씨의 ‘낙서문학사발흥자편’ 속 인물의 대사는 인터넷을 통해 익숙한 ‘말본새’라는 것.

[가벼움]

박민규(39·사진) 씨의 ‘지구영웅전설’에는 슈퍼맨, 바나나맨 같은 ‘유치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미국식 제국주의 비판’이라는 거대한 테마지만 코믹한 설정을 통해 무게감을 확 줄여 버린다. 최 교수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이 단 한 줄의 별명이나 비유, 심지어 욕설로 대치되는 상황과 흡사하다”면서 심각한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이 형식은 젊은 작가들의 소설과 인터넷 댓글의 공통점이라고 설명한다.

[재조립]

지적인 소설을 쓰는 것으로 알려진 김연수(37·사진) 씨의 소설에도 인터넷 글쓰기의 영향이 스며 있다는 분석은 흥미롭다.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단편들이 묶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경우 “역사가 사실로서가 아니라 작가가 수집한 정보의 다시 쓰기로 재탄생한다”. 이 구성 방식은 디지털 환경에서 누리꾼이 원하는 자료를 자르고 붙여 재조립하는 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엄숙함 털고 주절거리듯…디지털시대 걸맞은 문제의식 짚어내야”

‘종이 소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최 교수는 오감을 자극하는 멀티미디어의 특성상 ‘인터넷인데 글자만 나오는’ 인터넷소설의 세가 약해진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다만 엄숙하고 경건한 문학의 가치는 바래 가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의견이다. 게임 영화 광고 등 문화 각 분야에서 다양한 스토리텔러가 나오는 시대에, 소설가는 이제 시대의 선지자가 아니라 ‘원 오브 스토리텔러’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한국 소설이 새로워지기 위해선 형식만 인터넷 글쓰기와 흡사하고 주제의식은 고루한 소설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맞서서 짚어 내는 작품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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