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석제의 그림 읽기]말 잘하는 사람들

  • 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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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 주세요.’ 그림=전금하, 문학동네 펴냄.
‘내 말 좀 들어 주세요.’ 그림=전금하, 문학동네 펴냄.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표현의 교묘함에 감탄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십여 년 전 홍콩에 갔을 때의 일이랍니다. 묵고 있는 여관 주인이 여행사를 하는 사람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가는 기차표를 싸게 사 주겠다고 해서 그에게 돈을 맡겼습니다. 시간이 되어서 표를 받은 뒤 기차를 타러 가서 보니 그 표가 가짜라는 게 아닙니까. 그는 여관으로 다시 돌아가서 주인에게 따졌지요.

“아니, 난 그 사람이 여행사를 한다는 것만 알았지 실제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난 돈만 전해 줬을 뿐이에요.”

여관 주인은 말했습니다. 그는 여관 주인을 통역으로 대동하고 ‘그 사람’의 여행사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기차표는 우리가 주로 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아는 동생한테 맡겼어요. 난 모르는 일이에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생은 어디 있습니까?”

그는 하루해가 저무는 것을 억울해하며 물었습니다.

“글쎄, 오늘 선전인가 광저우 들어간다던데요.”

그는 더욱 약이 올랐습니다.

“언제 온답니까? 어디 살아요?” “한번 들어가면 한 열흘쯤 걸리는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고요. 원래 중국에 집이 있다고 했으니까 언제 올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는 동생이라면서 그렇게 몰라요?” “그 사람이 형님 형님 하면서 나를 잘 아는 척해서 아는 동생이지요. 그런 동생 한 백 명은 돼요.”

그로부터 칠팔 년이 지난 뒤 ‘그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어느 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한국에 왔답니다. 그는 그 감독이 인터뷰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경기 전 감독은 통역을 통해 “우리는 당신들을 잘 알지만 당신들은 우리를 잘 모른다. 경기 당일 당신들은 우리의 진정한 실력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더랍니다. 실제 경기에서 그 감독의 팀은 대패했지요. 경기 뒤에 다시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통역 대신 자막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물었습니다.

“어때, 아는 동생 같아?”

그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얼른 가로저었습니다.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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