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이 책]하이에크, ‘자유의 길’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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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 알리기엔 성공 한국적 상황 적용엔 소홀

무한경쟁의 도도한 흐름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더 극적인 방식으로 상징하는 것은 없다. “농업도 시장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도 그 흐름 위에 서 있다. 이제 신자유주의의 전 지구적 확산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처럼 보인다.

하이에크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다. 그가 평생을 싸워 온 두 적은 국가사회주의와 서구복지국가 체제였다. 하이에크는 시장을 전면 부정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할 수밖에 없음을 반세기 훨씬 이전부터 역설하였다. 당시 그런 목소리는 극소수에 불과했으나 죽기 직전인 1989년 하이에크는 자신의 예측이 실현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서구에서도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시민복지와 분배정의를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비효율성이 드러나고 경제침체가 심화되면서 하이에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작은 국가, 큰 시장’을 앞세워 신자유주의의 기수가 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91년 그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한 것도 상징적이다.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의 자유기업원도 하이에크의 저작들을 연이어 펴내고 있다.

그러나 양극화 같은 신자유주의의 그늘이 짙어질수록 하이에크에 대한 거부감도 높아졌다.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발전국가가 견인한 재벌독점경제의 폐해에 민감한 한국 지식인 사회에 특히 널리 퍼져 있다. 독실한 하이에크주의자인 민경국 교수는 이런 편견과 싸워오면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인 하이에크의 진면목을 알리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왔으며 ‘하이에크, 자유의 길’은 그 결정판이다.

흔히 고전은 그 이름과 저자만 거론될 뿐 잘 읽히지는 않으며 하이에크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냉전반공주의에 대한 반감이 ‘하이에크 경시’ 풍조를 더 악화시켰다. 6·25전쟁 후 정부가 하이에크의 ‘예종에의 길’을 반공주의 정책의 권장도서로 펴낸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하이에크, 자유의 길’은 우리 사회 특유의 하이에크에 대한 천박한 무지와 오해의 카르텔을 두드려 깬다. 하이에크는 청년시절의 감각이론에서 시작해 진화적 인식론, 과학철학, 자생적 질서, 자유론, 국가와 공법, 법의 지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정연한 사유를 전개한 거대이론가였는데, 거의 600쪽에 이르는 민 교수의 이 연구서는 하이에크 거대이론의 전체 모습을 치밀하고 명쾌하게 재구성했다. 앞으로 하이에크 연구는 이 책을 징검다리 삼아 진행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나 이 노작은 너무 하이에크 순응적이다. 저자는 하이에크의 방대한 ‘진화론적 자유주의 사회철학’을 ‘재구성해 체계화’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우리에게 주는 이론적, 실천적 교훈을 정립하는 목적’에는 미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현장지식’에 대한 하이에크 자신의 강조를 민 교수가 실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저자는 한국적 발전국가의 특성이나 재벌독점경제의 폐해를 간과하고 이 문제들을 ‘하이에크적 보편성’이 삼켜버리게 한다.

우리가 만약 시장의 철학을 개념화하려 한다면 하이에크의 통찰이 가장 중요하다.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왜 붕괴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하이에크적 ‘자생적 질서’와 ‘법의 지배’ 개념보다 더 투명한 것도 드물다. 큰 국가의 개입이 빚어내는 역기능과 부작용을 고치는 데 그의 처방은 한국적 맥락에서도 의미심장한 바 있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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