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자아 찾고 마음속 상처를 치유… ‘꿈의 재발견’

  • 입력 2007년 3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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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거실이 보이고 정면에는 싱크대가 있습니다. 오른쪽 구석에는 낑낑거리는 강아지가 매여 있는데 지저분해 안지를 못해요. 너무 어두워 불을 켰는데 순간적으로 눈을 뜰 수가 없어요. 강아지에게 물을 떠 주었더니 허겁지겁 먹습니다….”

23일 서울 중구 명동 가톨릭회관의 한 강의실. 김현정(여·가명) 씨가 자신의 ‘꿈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을 설명했다. 20여 명의 참가자는 김 씨의 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다시 낮잠이 들었어요. 이번에는 방 2개짜리의 깔끔한 아파트지만 어둡습니다. 불빛을 조정해 적당하게 밝기를 맞춥니다. 수납장 맨 위에는 커피가 있어요. 커피머신의 표시등이 깜박깜박 빛나고 있네요.” (김 씨)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강아지를 키워 본 경험이 있나요? 색깔은 어땠어요?”

“혹시 커피와 관련된 기억이 있어요?”

김 씨의 대답이 이어졌다.

“커피는 무엇인가 일을 시작하는 신호가 아닐까요. 커피 한 잔 마시고 이제부터 공부해야지 하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참가자들의 이력은 다양했다. 심리 치료사, 군종신부와 수녀, 재미교포, 고교 교사, 직장인, 주부 등.

김 씨의 꿈 설명과 질의응답이 끝나자 저마다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것이 만일 나의 꿈이라면 어두운 거실과 낑낑거리는 강아지에게서는 처량함이 느껴져요. 다행히 두 번째 꾼 꿈은 좀 더 희망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어두운 곳에 매여 있고 목말라하는 강아지는 묻혀 버린 여성성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요. 강아지를 키우던 당시 조교, 유학 준비, 인권운동 등 대외활동이 너무 많아 무의식적으로 여성적인 면을 거부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도 뜰 수 없는 강한 불빛은 폭력적이라는 느낌입니다.”

“조절 가능한 불빛이라는 점에서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꿈은 자아를 찾는 ‘나침반’

이날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행사는 ‘그룹 꿈 분석 작업’. 지난해 9월 첫 모임 이후 매주 금요일에 꾸준히 열리고 있다. 참가자들은 각자 지난주에 꾼 꿈을 소개한 뒤 하나를 골라 그날의 주제로 삼는다. 약 45분간 한 가지 꿈에 대한 집단 분석이 이뤄진다.

그룹 꿈 분석은 1960년대 미국의 제러미 테일러(샌프란시스코 위즈덤대) 교수가 최초로 제창한 방식이다. 당시 미국의 인종차별 타파를 위해 모인 한 토론그룹은 구성원들이 서로 격렬하게 비난하며 깨질 위기에 빠졌다. 그때 제러미 교수는 각자가 얼마나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자인지를 우선 인정하고 각자가 내면의 정의를 이루는 데 그룹 꿈 분석 작업을 이용했다.

세계꿈협회 초대 회장이기도 한 제레미 교수의 꿈 해몽 작업은 이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버클리 GTU 신학대학원, 홀리네임스 칼리지 등은 꿈 관련 강좌를 정규 교과과정으로 개설했다.

제러미 교수의 제자로 그룹 꿈 분석 작업을 국내에 소개한 고혜경 박사는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며 “상징과 은유의 언어로 된 꿈을 읽어 내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발견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그룹 꿈 작업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 ‘아∼하!’의 울림 느껴야

‘그룹 꿈 분석’은 기존 전문가들의 꿈 해석과 방법론에서 다르다.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의 꿈 상담은 권위자가 일방적으로 개인의 꿈을 해석하고 풀이해 주는 방식. 반면 그룹 꿈 분석은 다양한 사람이 각자의 처지에서 꿈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꿈을 꾼 사람이 직접 꿈의 의미를 느끼도록 해 주는 작업이다.

고 박사는 “그룹 꿈 작업은 이론적으로는 카를 융의 이론이 많이 깔려 있지만 일방적인 꿈 풀이는 절대 하지 않는다”며 “이는 같은 형태와 색깔을 꿈에서 보아도 개인의 체험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룹 꿈 작업의 특징은 남의 꿈일지라도 각자가 자신의 꿈이라는 전제하에서 해석한다는 것이다. 꿈을 분석할 때 ‘당신의 꿈은 ∼을 의미한다’는 식의 표현은 쓰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꿈 풀이를 듣다 보면 특정인에게서 ‘아∼하!’라는 울림이 들려옵니다. 내가 보기 싫은 것들, 숨기고 싶었던 것들이 다른 사람의 시각에 의해 드러나는 순간이 나의 꿈을 제대로 이해하는 열쇠가 돼죠.”(A 씨)

반년 동안 그룹 꿈 분석을 하다 보니 서로 ‘꿈의 파장’이 잘 맞기도 한다.

“특정인과 연결된 꿈을 꾸거나, 그 사람의 꿈 풀이가 유난히 잘 들어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평소 거만한 태도 때문에 싫어했던 참가자의 꿈 분석이 끝난 뒤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 경험도 있어요.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려면 그 사람의 꿈을 보라’는 말도 했습니다.”(김현정 씨)

꿈을 공동으로 분석하는 작업에 전문가는 필요 없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간단한 꿈 기록 방식과 기본적인 규칙만 알면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그룹 꿈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

한 참석자는 “이 작업에도 지켜야 할 룰은 있지만 예의는 필요 없다”며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이 나의 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만 인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꿈 분석’ 위한 팁 3가지

그룹 꿈 분석 작업의 핵심은 ‘꿈의 민주주의’다. 전문가의 권위를 이용한 일방적 해석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공동작업을 통해 꿈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내자는 뜻. 그래서 그룹 꿈 분석 작업은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다만 ‘아∼하!’의 체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꾸준히 꿈 분석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 꿈 기억하기

꿈 기억을 증진시키려면 잠들기 전 손이 쉽게 닿는 머리맡에 기록할 도구를 준비해 중요한 단어 한두 개나 간단한 이미지를 기록한다. 비타민B 복합체를 섭취하면 꿈 기억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 꿈 일기장 만들기

정해진 규칙은 없다.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 두꺼운 노트로 꿈 일기장을 만든다. 다만 일기를 쓸 때는 현재형으로 기록하고 꿈제목을 붙인다.

○ 꿈 이야기하기

최소 5∼7명의 소그룹이 기본이 돼 조용한 공간에서 원을 이루고 각자 기록한 꿈을 이야기한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이것이 만일 나의 꿈이라면…’이라는 말로 다양한 견해를 나눈다. 아로마 향과 초 등을 이용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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