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75>飢者易食, 渴者易飮

  • 입력 2007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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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그르치고 난 후에, 왜 일을 그르치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면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평상시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에 무엇인가가 눈을 가렸다고 말한다. 눈을 가린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때로는 눈앞의 허욕이 눈을 가리기도 하고, 금전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일의 본질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飢者易食(기자이식), 渴者易飮(갈자이음)’이라는 말이 있다. ‘飢’는 ‘배고프다, 굶주리다’라는 뜻이다. ‘者’는 ‘사람’을 뜻하므로 ‘飢者’는 ‘굶주린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易’는 ‘쉽다, 바꾸다’라는 뜻이다. ‘容易(용이)’는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뜻이고, ‘貿易(무역)’은 원래 ‘바꾼다’는 뜻이다. ‘容’은 ‘받아들이다’는 뜻이고, ‘貿’는 ‘바꾼다’는 뜻이다. ‘易’은 이와 같이 ‘쉽다’는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이’로 읽고, ‘바꾸다’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는 ‘역’으로 읽는다. ‘食’은 ‘먹다’라는 뜻이므로 ‘易食’은 ‘쉽게 먹는다’라는 말이 된다. ‘渴’은 ‘목마르다’라는 뜻이다. ‘渴症(갈증)’은 ‘목마른 증세’라는 말이다. ‘飮’은 ‘마시다’라는 뜻이다. ‘飮料(음료)’는 ‘마실거리’라는 말이고, ‘飮料水(음료수)’는 ‘마실거리가 되는 물’이라는 말이다. ‘料’는 ‘거리, 재료’라는 뜻이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飢者易食, 渴者易飮’은 ‘굶주린 사람은 쉽게 먹고, 목마른 사람은 쉽게 마신다’는 말이 된다. 이를 풀어 보면 ‘굶주린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쉽게 먹으며, 목마른 사람은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쉽게 마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면 독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는 평상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飢者易食, 渴者易飮’-평상심을 잃으면 독이 되는 것도 먹고 마시며, 평상심을 가지면 사물의 진실이 보인다는 말이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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