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이 길∼어졌다

  • 입력 2007년 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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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는 올해 초 장편공모제를 바탕으로 하는 ‘창비장편소설상’을 제정했다. “한국문학에 힘찬 서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창비 측은 최근 문단에서 장편 창작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만큼 좋은 작품이 많이 모이리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한국문학이 장편으로 몸을 불리고 있다. 장편 공모인 ‘문학동네소설상’의 지난해 응모작품 수는 104편으로 전해보다 40편 이상 늘었다. 지난해 2회를 맞은 문예중앙소설상도 응모작이 첫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젊은 작가들의 장편 창작도 활발하다. 김연수(37) 씨의 장편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계간 ‘문학동네’ 연재가 올봄으로 끝나면 정이현(35) 씨가 연재 바통을 이어받을 참이다. 김경욱(37) 씨는 ‘문학과 사회’에 ‘천년의 왕국’을 연재하고 있고, 이기호(35) 씨는 문예중앙 봄호부터 장편 연재에 들어간다.

시장도 커가는 추세다. 2005년에는 공지영 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김별아 씨의 ‘미실’에 주로 기댔지만, 지난해의 경우 박현욱 씨의 ‘아내가 결혼했다’, 정이현 씨의 ‘달콤한 나의 도시’ 등이 히트했고, 박민규 씨의 ‘핑퐁’, 조두진 씨의 ‘능소화’, 김탁환 씨의 ‘리심’, 김영하 씨의 ‘빛의 제국’ 등 내용도 탄탄하고 시장 반응도 좋은 작품이 줄줄이 이어졌다.

한국문학은 그간 장편이 아닌 단편 창작에 치우쳤던 게 사실이다. 김동인 이상 이태준 등 단편 중심으로 쓰인 근대문학의 역사도 그렇고, 문예지의 청탁도 주로 단편에 집중돼 왔다. 문단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이후부터였다. 그해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선정되면서 우리 문학을 알리기 위해 행사에 참가한 작가들은 ‘세계 무대에 나가려면 장편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세계문학의 판도는 장편 중심으로 짜인 지 오래이기 때문.

소설가 김영하 씨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무크도 그렇고, 해외 유명 도서전에 오는 해외 작가들은 대부분 신작 장편 출간에 맞춰 움직이더라”고 말했다. 김 씨는 “세계 출판시장에 나가면 장편을 몇 편 발표했는지를 보고 작가의 볼륨을 재단한다”면서 자신도 앞으로 장편 위주로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유수의 출판사 쇠유에서는 서구시장을 개척하려는 작가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밝힌다. 작품이 낯설고 새로워서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작가, 장편소설 다섯 권은 갖고 있는 작가다.”

이는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팀장의 전언이다. 곽 팀장은 “독일의 주어캄프, 프랑스의 갈리마르 같은 유명 출판사에서 번역·출간하는 한국문학 작품은 모두 장편”이라면서 “작가들도 이런 분위기를 인식하고 최근 장편에 몰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평론가 김화영 씨는 “숙성시켜 우려낸 주제와 소재를 호흡 긴 장편에 담는 게 세계 문학의 흐름”이라면서 “우리 작가들도 해외 독자를 의식해 서사의 밀도가 높고 주제의식도 수준 있는 장편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편 활성화로 인해 침체된 문학출판 시장이 되살아나리라는 기대도 있다. 장편은 단편에 비해 ‘팔릴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 작가들이 장편을 활발하게 발표해 일본소설에만 열광하는 독자들의 눈을 모국어 문학으로 돌리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밤은 노래한다’ 등 두 권의 장편을 출간할 계획인 소설가 김연수 씨는 “장기적으로 장편 위주의 문학출판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 “작가들도 작품(단편)이 아니라 책(장편) 위주로 평가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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