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3년 잉글랜드 축구 헝가리에 참패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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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팀이 경기장에 들어설 때 그들의 기괴한 축구화를 봤죠. 복사뼈 밑이 싹둑 잘려 나간 게 꼭 슬리퍼 같더군요. ‘유니폼조차 제대로 못 입었네’라고 동료에게 말했죠.”

1953년 11월 25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축구경기장. ‘축구 종가’ 잉글랜드 대표팀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당연히 이길 경기를 한다는 생각이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1901년 이후 50여 년간 홈경기에서 진 적이 없었다.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 빌리 라이트도 같은 생각이었다. 목 부분이 V자 모양으로 파인 헝가리 팀의 유니폼과 이상한 모양의 축구화에 더 관심이 쏠렸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웸블리 경기장의 분위기는 180도로 바뀌었다. 헝가리의 난도르 히데그쿠티의 슛이 잉글랜드 골네트를 갈랐다. 1분 30초 만이었다.

잉글랜드는 바빠졌다. 13분경 재키 스웰은 스탠 모튼슨의 패스를 골로 연결해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동점 상황도 잠시, 경기의 주도권은 헝가리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히데그쿠티의 추가 골에 이어 주장 페렌츠 푸스카스의 골이 이어졌다.

“라이트는 내가 안쪽으로 파고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내가 그랬다면 라이트는 볼을 빼앗아 관중석으로 걷어찼겠죠. 하지만 저는 축구화 밑창에 달린 스파이크로 볼을 몸 쪽으로 끌어당긴 뒤 골네트로 찼죠.”

지금은 웬만한 축구선수는 모두 할 줄 알지만, 당시로선 ‘최첨단’이었던 푸스카스의 드래그백(drag-back) 기술이었다. 전반전 종료 호각 소리가 났을 때 스코어는 4-2.

후반전도 달라지지 않았다. 히데그쿠티의 해트트릭과 함께 경기는 6-3으로 끝났다. 잉글랜드에는 충격의 패배였다.

“시스템 플레이를 봤어요. 환상적인 플레이였죠. 헝가리 선수들은 모두 화성에서 온 사나이 같았어요.”(잉글랜드의 축구 명장 보비 롭슨 경)

공격수와 수비수를 W와 M자처럼 배치하는 잉글랜드의 ‘WM 포메이션’은 헝가리의 4-2-4 포메이션에 속수무책이었다. 선수들의 기량과 정신력도 뒤졌다.

6개월 뒤 잉글랜드는 설전을 다짐하며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찾았으나 7-1 대패라는 더욱 충격적인 결과를 안고 영국 해협을 건너와야 했다.

이후 헝가리는 1950년대 유럽 축구를 평정하면서 ‘마법의 팀’으로 불렸다. 상의에 칼라가 달려 있던 축구 종주국의 유니폼도 ‘축구 변방’으로 여겨졌던 헝가리 스타일로 바뀌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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