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문학? 우리 하기 나름!…인문학도 6명 난상토론

  • 입력 200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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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대학의 인문대 재학중인 이강수 이원희 김정현 김하영 동주영 이주영(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씨 등 6명이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들은 미팅 취업 과외 등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지만 인간다움의 가치를 공부하는 인문학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강병기 기자
서울시내 대학의 인문대 재학중인 이강수 이원희 김정현 김하영 동주영 이주영(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씨 등 6명이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들은 미팅 취업 과외 등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지만 인간다움의 가치를 공부하는 인문학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강병기 기자
혈기 왕성한 인문학도 6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강수(연세대 철학과 4학년), 이원희(경희대 국문과 2학년), 동주영(고려대 한국사학과 4학년), 김하영(이화여대 국문과 2학년), 이주영(연세대 불문과 4학년), 김정현(숙명여대 중문과 2학년) 씨.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 정작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서울 광화문 인근 음식점과 커피숍에서 3시간 동안 이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들었다. 그 결과 ‘확·실·히’ 교수들과는 접근법이 달랐다.

○ 인문학도로 살아가기의 어려움

▽동주영=미팅 나가면 소외당하기 쉽죠. 과가 ‘구리다’고…. ‘한국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쾨쾨하고, 고지식하고, 결정적으로 전망이 없다는…. 여학생들은 이리저리 재니까.

▽이주영=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미팅이나 소개팅하고 싶다는 남학생들은 약대생이면 무조건 OK인걸요. 아니면 사범대생 쫓아다니고….

▽이강수=그래서 솔직히 난 미팅 나갈 때 우리 과 사람들하고는 안 나가요. 철학과 사람들로 팀을 만들어서 나가면 거의…어렵죠.(웃음)

▽김정현=글쎄, 재는 것보다는 직업을 보면 사람들 성향을 아니까, 그런 것도 있지 않나요?

▽동주영=(발끈하며) 그럼 결혼 시장에서 기피 대상인 인문학 석사 박사들은 성향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건가요?

▽김하영=한번은 과외 자리를 소개받아 학부모랑 통화하는데 영어, 수학을 원하기 때문에 국문과생은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다 공부하고 온 거니까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도 ‘필요 없다. 수학과 학생 구하겠다’고 하고….

▽이원희=선배들과 얘기할 때 다른 학과보다 취업이 안 된다는 얘기 들으면 불안해지죠.

▽동주영=경영학과 복수전공하려고 신청했다가 떨어졌어요. 기업에서 붙인 인재채용란을 보면 아예 상경계열 아니면 원서도 못 쓰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떻게든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하려는 인문학 전공자들이 많아요.

▽이강수=저는 솔직히 고등학교 때부터 철학이 너무 공부하고 싶어 철학과에 갔는데 주변에서는 마치 점수 맞춰서 간 줄 알아요. 짜증나죠.

▽이원희=맞아요. 저도 그래요. 국문과 갔다고 하면 성적 안 돼서 그런 줄 안다니까.

▽김하영=어른들한테 전공 말하면 “그럼 선생하는 거냐?” 아니면 “너 거기 나와서 뭐할 건데?” 둘 중 하나예요.

▽동주영=저는 작년에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거든요. 주변 반응이 “너 한국사 전공하는 놈이 영어는 왜 배우느냐?” 그런 식이에요.

▽이강수=인문학의 위기라는데, 솔직히 글쎄요, 주위에서 많이 부풀리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저녁 수업을 하는데 쉬는 시간이 돼서 애들이 거의 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 방송사 기자가 들어오더니 카메라로 찍어 갔어요. 그런데 그날 밤 뉴스에 ‘인문학 강의에 사람이 이렇게 없습니다. 위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김하영=인문학 듣는 학생이 없다고 하는데 그리스신화를 주제로 하거나 미술과 문학을 크로스해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 인문학 강의는 수강 인원을 넘기고 대기자도 많아요.

▽이원희=맞아요. 우리도 국문학 전공에 TV 드라마를 보고 연구하는 수업이 개설됐는데 인기가 많아요.

▽김정현=사회과학 쪽 수업 듣다가 인문학 수업을 들으면 너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똑같은 주제, 똑같은 텍스트, 똑같은 방식의 수업….

▽동주영=확실히 아직도 교수님들 수업에는 엄숙, 권위 같은 의식이 많은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서비스’한다는 개념은 없고 그냥 ‘내가 관심 있게 공부한 거 잘 들어라’는 식이죠. 물론 좋은 선생님도 많지만….

▽이주영=참신한 인문학 주제는 학생들의 관심이 대단해요. 그런데 그런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인문학, 그래도 ‘너는 내 운명’”

▽이강수=인문학자들이 언제는 풍족했나요? 옛날 유명한 인문학자들도 다 알바(아르바이트)하고 과외하고 그러면서 그 수입으로 연구했거든요. ‘경제력 곤란=위기’는 아니죠.

▽이원희=솔직히 후회한 적은 없어요. 불안했을 뿐이지. 다른 학문에서 찾을 수 없는 상상력, 낭만, 인간다움의 가치를 알게 됐다는 점에서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이 길을 갈 겁니다.

▽김하영=시험 전날 공부 안 해도 답안지 작성할 수 있고….(웃음)

▽이주영=일종의 롤러코스터가 아닐까요.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있고…. 지금은 인문학이 하강기인데 다시 치고 올라갈 거라고 믿어요. 결국 모든 학문의 뿌리는 인문학이니까.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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