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 정작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서울 광화문 인근 음식점과 커피숍에서 3시간 동안 이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들었다. 그 결과 ‘확·실·히’ 교수들과는 접근법이 달랐다.
○ 인문학도로 살아가기의 어려움
▽동주영=미팅 나가면 소외당하기 쉽죠. 과가 ‘구리다’고…. ‘한국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쾨쾨하고, 고지식하고, 결정적으로 전망이 없다는…. 여학생들은 이리저리 재니까.
▽이주영=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미팅이나 소개팅하고 싶다는 남학생들은 약대생이면 무조건 OK인걸요. 아니면 사범대생 쫓아다니고….
▽이강수=그래서 솔직히 난 미팅 나갈 때 우리 과 사람들하고는 안 나가요. 철학과 사람들로 팀을 만들어서 나가면 거의…어렵죠.(웃음)
▽김정현=글쎄, 재는 것보다는 직업을 보면 사람들 성향을 아니까, 그런 것도 있지 않나요?
▽동주영=(발끈하며) 그럼 결혼 시장에서 기피 대상인 인문학 석사 박사들은 성향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건가요?
▽김하영=한번은 과외 자리를 소개받아 학부모랑 통화하는데 영어, 수학을 원하기 때문에 국문과생은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다 공부하고 온 거니까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도 ‘필요 없다. 수학과 학생 구하겠다’고 하고….
▽이원희=선배들과 얘기할 때 다른 학과보다 취업이 안 된다는 얘기 들으면 불안해지죠.
▽동주영=경영학과 복수전공하려고 신청했다가 떨어졌어요. 기업에서 붙인 인재채용란을 보면 아예 상경계열 아니면 원서도 못 쓰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떻게든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하려는 인문학 전공자들이 많아요.
▽이강수=저는 솔직히 고등학교 때부터 철학이 너무 공부하고 싶어 철학과에 갔는데 주변에서는 마치 점수 맞춰서 간 줄 알아요. 짜증나죠.
▽이원희=맞아요. 저도 그래요. 국문과 갔다고 하면 성적 안 돼서 그런 줄 안다니까.
▽김하영=어른들한테 전공 말하면 “그럼 선생하는 거냐?” 아니면 “너 거기 나와서 뭐할 건데?” 둘 중 하나예요.
▽동주영=저는 작년에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거든요. 주변 반응이 “너 한국사 전공하는 놈이 영어는 왜 배우느냐?” 그런 식이에요.
▽이강수=인문학의 위기라는데, 솔직히 글쎄요, 주위에서 많이 부풀리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저녁 수업을 하는데 쉬는 시간이 돼서 애들이 거의 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 방송사 기자가 들어오더니 카메라로 찍어 갔어요. 그런데 그날 밤 뉴스에 ‘인문학 강의에 사람이 이렇게 없습니다. 위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김하영=인문학 듣는 학생이 없다고 하는데 그리스신화를 주제로 하거나 미술과 문학을 크로스해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 인문학 강의는 수강 인원을 넘기고 대기자도 많아요.
▽이원희=맞아요. 우리도 국문학 전공에 TV 드라마를 보고 연구하는 수업이 개설됐는데 인기가 많아요.
▽김정현=사회과학 쪽 수업 듣다가 인문학 수업을 들으면 너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똑같은 주제, 똑같은 텍스트, 똑같은 방식의 수업….
▽동주영=확실히 아직도 교수님들 수업에는 엄숙, 권위 같은 의식이 많은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서비스’한다는 개념은 없고 그냥 ‘내가 관심 있게 공부한 거 잘 들어라’는 식이죠. 물론 좋은 선생님도 많지만….
▽이주영=참신한 인문학 주제는 학생들의 관심이 대단해요. 그런데 그런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강수=인문학자들이 언제는 풍족했나요? 옛날 유명한 인문학자들도 다 알바(아르바이트)하고 과외하고 그러면서 그 수입으로 연구했거든요. ‘경제력 곤란=위기’는 아니죠.
▽이원희=솔직히 후회한 적은 없어요. 불안했을 뿐이지. 다른 학문에서 찾을 수 없는 상상력, 낭만, 인간다움의 가치를 알게 됐다는 점에서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이 길을 갈 겁니다.
▽김하영=시험 전날 공부 안 해도 답안지 작성할 수 있고….(웃음)
▽이주영=일종의 롤러코스터가 아닐까요.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있고…. 지금은 인문학이 하강기인데 다시 치고 올라갈 거라고 믿어요. 결국 모든 학문의 뿌리는 인문학이니까.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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