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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9월 2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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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6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백석아트홀. 후배 피아니스트의 녹음 프로듀싱 작업을 지휘하던 김대진(44)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게 반가운 제자가 찾아왔다. 아시아인 최초로 영국 리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18) 군이었다.
전날 귀국한 김 군은 “시차적응이 안 돼 밤새 한 숨도 못잤다”며 벌건 눈을 하고서도 이날 등교해 3학년 수업을 들었다. 김 군이 “오랜만에 수업에 들어갔더니 울렁거린다”고 어리광을 부리자 김 교수는 “야 임마, 술 담배 좀 그만 해. 피아니스트는 손 떨리면 끝이야!”하며 핀잔을 준다.
18세의 나이에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제자에게 칭찬 한 마디 건네도 되건만 “나는 좋다기보다 걱정이 앞선다”며 김 교수는 금방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콩쿠르를 통해 주어지는 무대에서 인정받아야 진짜 일류가 되는 거야. 그 무대에서 세계적인 매니지먼트, 교향악단, 지휘자로부터 픽업돼야 해. 콩쿠르는 상대평가지만 무대는 절대평가지. 실력뿐 아니라 무대 매너도 좋아야 하고, 얼굴도 잘 생겨야 하고, 상품가치도 있어야 하고…. 콩쿠르 1등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어려운 관문이지.”
김 군은 1999년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김 교수를 사사해 왔다. 지난해 쇼팽콩쿠르 결선에 진출했던 임동민 임동혁 형제, 손열음, 첼리스트 고봉인 씨 등도 예비학교 출신이다.
부모가 맞벌이 교사인 김 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혼자서 대한음악사에 가서 악보를 사고, 홀로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오케스트라, 첼로, 오페라 등 다양한 음악적 관심을 보여왔다. 다니엘 바렌보임이나 정명훈 씨처럼 지휘와 피아노 분야에서 모두 세계적인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창 피아노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너무도 다양한 관심을 갖고 있는 제자에게 김 교수는 따끔한 충고를 던져줬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김 교수는 올해 초 안식년을 맞아 6개월간 김 군을 미국 뉴욕에 데려갔다. 워낙 친구들이 많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김 군에게 ‘외로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김 교수는 “피아노 실력이 늘기 위해선 자기 성찰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외로움이 필수”라고 말했다.
김 군은 “뉴욕에서 혼자 전철을 타고 다니며 앨프리드 브렌델 같은 거장의 연주를 듣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면서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찾아낼 때마다 굉장히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독립심이 강한 선욱이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 음악적 아이디어를 찾아가는 ‘음악가 정신’을 갖춘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지난해 선욱이가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제게 이제 더이상 다른 선생님은 필요 없습니다’라는 엽서를 받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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