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나의 행복, 나의 고통… 그것은 오직 춤!

  • 입력 2006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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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거부한 듯 거꾸로 춤을 추다 순간 정지하는 ‘프리즈’ 동작을 보여주고 있는 이상훈 씨. 요리에 대한 꿈도 있지만 아직은 춤꾼이고 싶다. 원대연 기자
중력을 거부한 듯 거꾸로 춤을 추다 순간 정지하는 ‘프리즈’ 동작을 보여주고 있는 이상훈 씨. 요리에 대한 꿈도 있지만 아직은 춤꾼이고 싶다. 원대연 기자
# 장면1

레게 스타일의 머리를 감출 누군가가 한 마리 표범처럼 무대에 웅크리고 있다. 한 팔로 바닥을 짚고 물구나무를 선 채 순간적으로 멈추는 ‘프리즈’, 마치 총을 쏘듯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톱 록’….

‘DMC 댄스 컴퍼니’의 이상훈(26) 공연댄스팀장이다.

물이 흐르듯 쉴 새 없이 연결되는 동작과 거꾸로 선 채 한 팔로 체중을 지탱하는 순간의 정지. 이때 댄서가 느끼는 체감중량은 몸무게의 세 배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스물여섯.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춤꾼, ‘비보이(B-boy)’의 세계에서는 환갑의 나이다. 비보이 공연으로 세계무대를 노크하고 있는 그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 요리를 사랑한 비보이

흥미로운 것은 춤꾼인 그가 ‘요리의 고수’라는 점이다. 중학교 때부터 춤에 빠져 지냈다. 춤을 자유롭게 출 수 없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방황하다 가출도 했다. 그러면서도 숭문고 재학 시절 양식은 물론 어렵다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1999년에는 삼육대 식품과학과에 진학했다.

춤에 미쳤던 수많은 비보이들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대부분 꿈을 접었다. 하지만 그는 재능을 보인 요리 대신 춤에 매달렸다. 결국 요리와 대학을 포기한 뒤 그룹 ‘젝스키스’, 구본승, 김장훈, 임성은 등 가수의 백댄서로 활약했다.

“대학에 가면서 50%가 비보이 대열에서 이탈하고, 20대 초반에 80%가 떨어져 나간다. 20대 중반에도 비보이로 무대에서 뛰는 동료는 드물다.”

# 장면2

춤을 추기 시작한 지 5분이 지났을까. 마치 사냥을 위해 전력질주를 하던 맹수와 같던 그가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반신을 벗은 그의 근육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그는 요즘 회전과 힘에 주력하는 ‘파워 무브’보다는 창의적인 춤을 만드는 ‘스타일 무브’를 선호한다.

그의 집은 2대에 걸쳐 음식점을 운영했다. 그의 혈관에 흐르는 요리에 대한 감각은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 집안에서는 지금이라도 자격증을 살려 멋진 한식 레스토랑을 꾸리자고 설득한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10년, 아니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때까지는 춤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 세계로 가는 비보이 공연

유명 가수의 백댄서쯤으로 여겼던 비보이들은 2000년대 들어 뜻밖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익스프레션’ ‘갬블러’ 등 전문 비보이 팀은 비보이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비보이가 등장하는 영화·드라마·CF가 잇따라 등장했고, 비보이의 춤을 공연으로 만든 ‘B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전용극장에서 7만 명의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난타’의 제작사인 PMC 등 7, 8개 제작사도 B보이를 앞세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마루커뮤니케이션’은 이상훈이 소속된 ‘DMC 댄스 컴퍼니’를 중심으로 한 공연 ‘굿모닝 비보이’를 무대에 올린다. 9월에 전국 순회공연을 펼치고 내년에는 해외공연에 나설 예정이다.

“7월 국회에서 열린 비보이 공연에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오셨다. 정말 춤을 잘 춘다면서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했다. 십몇 년간 속 썩이다 듣는 말이라,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속으로는 펑펑 울었다.”

# 장면3

풍차처럼 회전하는 ‘윈드 밀’과 헤드스핀을 결합시킨 헤일로우, 브라질 전통 무술을 춤 동작으로 형상화한 ‘카포에라’가 이어졌다.

불과 몇 초의 차이지만 정지되는 순간이 조금 길어지면 아득하게 느껴진다. 헤드스핀의 횟수가 늘어날 때면 지켜보는 이의 심장은 잔뜩 오그라든다.

○ 공연 끝나면 주방으로

181cm, 68kg. 격렬한 춤은 살이 찔 틈을 주지 않았다. 다른 비보이처럼 손과 발목, 허리, 무릎 등의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2004년에는 오른쪽 무릎의 반월형 연골이 손상돼 격렬한 춤을 추지 말라는 진단까지 받았다.

춤은 행복이자 고통이다.

“좋아서 시작한 춤이지만 힘들었다. 춤추는 동료 말고는 가족도 친구도 모두 떠났다. 스무 살 넘어 자존심 때문에 주변에 손을 벌릴 수 없었고 사흘을 굶기도 했다.”

그가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다. 1995년 가출한 뒤 춤추는 친구들과 해수욕장에서 춤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번 공연하면 20만∼30만 원을 모았다. 당시 자장면 가격이 1500원이었다. 제대로 된 공연장이 아니었기에 온몸에 멍이 들고 머리털이 빠졌다. 하지만 그 상처가 아프기보다는 난생 처음 인정받은 것처럼 느껴져 뿌듯했다.

“내가 10대처럼 춤을 출 수는 없다. 하지만 비보이의 정신은 도전이다. 최고가 되겠다는 자부심이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10년 뒤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비보이 공연의 멋진 연출자가 되고 싶다.”

요리에 대한 꿈은 미뤘지만 9월 그는 주방으로 들어갈지 모른다. 첫 공연이 성공하면 그가 자랑하는 특별 메뉴 사천 깐풍기를 땀 흘린 후배들에게 먹이고 싶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비보이=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소년… 1969년 美서 첫 사용

비보이는 ‘브레이크댄스(break dance)’를 추는 소년 혹은 남성을 가리킨다. 여성은 ‘비걸(B-Girl)’로 불린다.

비보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1969년 뉴욕의 한 DJ가 브레이크(음악을 틀다가 중간에 비트만 나오는 구간을 계속 들려주는 것) 타임에 “비보이들 나와!”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이후 B보잉(B-boying·브레이크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은 랩(rap), 디제잉, 그라피티(graffiti·벽화 또는 벽 낙서) 등과 함께 힙합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가 됐다. ▽디제잉(djing)=DJ가 즉석에서 분위기에 맞게 음악을 믹싱해 들려주는 것.

▽배틀(battle)=미국 래퍼 에미넘이 영화 ‘8마일’에서 랩 대결을 펼치는 것처럼 맞대결로 기량을 겨루는 것. 독일에서 열리는 ‘배틀 오브 더 이어’는 비보이들의 춤 대결 대회로 유명하다. 이 대회에는 매년 수만 명의 관객이 몰린다.

▽비트 박스(beat box)=손과 입을 사용하여 강한 액센트의 리듬을 만드는 것.

▽파핑(popping)=몸의 관절을 튕기듯 끊어주는 것. 1960년대에 시작된 로봇댄스가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설적인 댄서 파핀 피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프리즈(freeze)=‘얼다’라는 의미에 어울리게 순간 정지되는 듯한 춤의 마무리 동작을 가리킨다.

▽터클(tuckle)=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손을 바꾸어 회전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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