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61년 美북군 채찍 체벌 폐지

  • 입력 200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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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미국 독립전쟁 발발 직후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취임한 조지 워싱턴 장군이 맞닥뜨린 첫 고민은 군기 확립이었다. 개척정신을 자랑하며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식민지 이주민들로 구성된 군대는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워싱턴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했다. 채찍으로 다스린다는 것.

채찍질은 영국 해군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수병들의 군기 확립 수단이었다. 아홉 가닥으로 된 채찍(cat-o’-nine-tails)이 사용됐다. 절도 행위자의 경우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 사이를 달려가게 하면서 양쪽에서 무차별 매질을 가하는 형벌(running the gauntlet)로 다스렸다.

하지만 당시 대륙의회는 군법으로 채찍질을 39회까지로 제한해 놓은 상태였다. 고대 유대인이 40회로 제한했다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혹 숫자를 잘못 세 40회를 넘기는 일이 없도록 39회로 정한 것.

워싱턴은 의회에 채찍질 제한 횟수를 100회까지로 올려줄 것을 청원했고 1776년 의회는 이를 승인했다.

이후 워싱턴은 다시 채찍질 제한을 500회로 올려줄 것을 청원했다. “채찍질 100대로는 무뢰배를 사람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휘관들의 불평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회는 승인을 거절했다.

그러자 일부 지휘관은 편법을 찾아냈다. 채찍질을 2, 3차례로 나눠 집행함으로써 고통을 배가시키는 방법을 쓴 것이다.

남북전쟁은 이런 채찍질 체벌에 변화를 가져왔다. 1861년 8월 5일 북군은 채찍질 체벌을 공식 폐지했다. 전쟁터에 보낼 신병 모집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채찍질을 반인간적 행위로 규탄하던 여론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동양의 대표적 체벌이 몽둥이 매질이라면 서양의 체벌은 채찍질이었다.

고대 스파르타에선 젊은이들이 남자다움을 보이기 위한 시험으로 채찍질을 견뎌야 했다. 로마 시대엔 채찍질이 십자가 처형 전 예비 체벌이었고 ‘천벌(scourge)’이라 불렸다. 예수도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이런 채찍질을 당했다.

여러 가닥으로 만들어진 채찍은 끝에 금속 조각들이 붙어 있었다. 채찍을 내리치면 죄수의 몸에 두 번 정도 감기면서 금속 조각이 등과 가슴에 파고들고 채찍을 잡아당기면 살점이 찢기며 몸에 긴 고랑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극도의 고통으로 쇼크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가 신체형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부 이슬람 국가에선 여전히 채찍질 체벌이 공개 집행되고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도 태형이 남아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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