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별도 품고 씨앗도 품고… 손택수 시집 ‘목련 전차’

  • 입력 2006년 6월 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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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도착했다/한전 부산지사 전차기지터 앞/꽃들이 조금 일찍 봄나들이를 나왔다/나도 꽃 따라 나들이나 나갈까’(‘목련 전차’에서)

손택수(36) 씨는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으로 일찍이 주목을 받은 시인이다. 그는 편차 없이 고른 시편으로 ‘현대시’ 동인상을 수상하는 등 시단에서 자리를 굳혔다. 두 번째 시집 ‘목련 전차’(창비)를 통해 그는 자신의 든든한 저력을 다시 보여 주었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대단히 중요한 소재지만 자연 풍경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강이 날아오른다’의 한 부분. ‘강이 휘어진다 乙, 乙, 乙 강이 휘어지는 아픔으로 등굽은 아낙 하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맨다… 乙, 乙, 乙 물새떼가 강을 들어올린다 천마리 만마리 천리 만리 소쿠라지는 울음소리-’

시인은 한자 ‘乙(을)’의 모양과 소리에서 흐르는 강의 모양과 소리를 떠올리고, 새의 비상을 강의 날아오름으로 바꿔놓는다. 시인의 안내를 받으면 자연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인다. 낯설지만 아름답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미덕은 자연과 사람살이가 살뜰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손 씨의 시에서 달과 별과 사람과 씨앗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오늘은 땅심이 제일 좋은 날/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 설씨 문중 대대로 내려온 농법대로/할머니는 별들의 신호를 알아듣고/씨를 뿌렸다//별과 별 사이의 신호를 씨앗들도 알아듣고/최대의 發芽(발아)를 이루었다’(‘달과 토성의 파종법’에서)

흥겨운 가락과 정감이 살아 있는 시편들이 한 권의 시집으로 엮이자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의 주제는 어머니 대지의 따뜻한 품 안에서 인간이 누리는 평화다. 전남 담양 대숲에서, 부산의 바닷가에서 생활한 시인이 보기에 그것은 ‘섭리’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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