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0년 지구, 핼리혜성 꼬리에 진입

  • 입력 2006년 5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彗星. ‘비 혜, 별 성.’ ‘빗자루별’이다. 영어로는 ‘Comet’. 어원은 ‘긴 머리카락을 가진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Komete’. 뜻대로 하면 ‘머리카락 별’이다. 긴 꼬리를 보고 붙인 이름들이다.

밤하늘을 수놓는 ‘꼬리별’에 인간은 ‘재앙의 조짐’이요, ‘공포를 뿌리는 별’이라는 누명을 씌웠다.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칠 때 은나라에 혜성이 나타났다.

노르만의 정복왕 윌리엄스는 혜성을 잉글랜드를 공격하라는 계시로 받아들였지만 잉글랜드 왕 해럴드는 공포에 질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신라에 혜성이 나타나는 ‘괴변’이 일어나자 승려 융천사는 ‘혜성가’를 지어 혜성을 사라지게 하고 침입한 왜구를 물러가게 했다.

셰익스피어도 “거지들이 죽을 때는 혜성이 전혀 보이지 않지. 하늘은 왕들이 죽을 때만 반짝인다네”라고 했다.

이처럼 혜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앙의 조짐이자 괴변이었다.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20세기 초에도 마찬가지였다.

1910년 핼리혜성이 76년 만에 다시 왔다. 과학자들은 스펙트럼 조사 등을 통해 혜성에 유기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혜성의 꼬리에선 ‘시안’을 찾아냈다. 시안은 청산가리 같은 시안 화합물을 만드는 성분이다.

지름 1만2700여 km의 지구는 5월 18일 1억2000만 km나 되는 핼리혜성의 꼬리로 ‘진입’했다. 사람들은 ‘독가스’ 속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믿었다. 과학자들은 혜성 꼬리는 희박한 기체라서 ‘독’이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생명의 종말’을 기다렸다. 심지어 로스앤젤레스이그재미너 같은 신문은 ‘혜성의 시안은 아직도 당신을 죽이지 않았는가’, ‘전 인류가 마침내 무료 가스실로’, ‘많은 사람이 시안의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장사꾼들은 ‘혜성의 액땜 알약’과 ‘방독 마스크’를 팔았다. 급기야 공포에 떨며 자살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공황 상태였다. 그러나 지구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1986년 핼리혜성이 돌아올 때 소련 일본 유럽은 앞 다퉈 우주선을 보내 ‘기념 촬영’을 해 줬다. 그뿐이랴. 인류는 지난해 템펠1 혜성에 충돌체를 돌진시켜 ‘재앙의 조짐’을 분석하기도 했다. 어디에도 시안은 없었다. 초속 30∼60km의 엄청난 속도 때문에 혜성을 덮고 있는 얼음이 기체로 변해 태양 빛을 찬란히 반사할 따름이다.

혜성은 지구를 위해 우주에 ‘먼지’를 남긴다. 지구가 찾아오면 유성우(流星雨)의 장관을 선물하려고.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