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팔린다’…소설들 영화등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

  • 입력 2006년 4월 27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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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중혼(重婚)이라는 별스러운 소재를 다룬 박현욱 씨의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이 소설은 최근 영화사 10여 곳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치열한 경쟁 끝에 판권을 따낸 영화사 쇼이스트는 “제목에서 풍기는 인상이 강렬하고 소재도 신선해서 영화화하기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소설가가 ‘콘텐츠 팩토리’로

영화뿐 아니다. 소설은 요즘 드라마로, 뮤지컬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소설 1만 부 팔리기도 쉽지 않다”는 게 요즘 출판계의 고민이지만, 소설이 주변 예술장르로 팔리는 것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소설가가 ‘콘텐츠 팩토리(cont-ents factory)’가 된 것이다. 공지영 씨의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영화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촬영 중이고, 김훈 씨의 단편 ‘화장’은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했다.

드라마 작업도 활발하다. 드라마 외주제작사 에이트픽스는 시골 소녀가 사업가로 성장하기까지의 내용을 담은 천명관 씨의 장편소설 ‘고래’의 TV드라마 대본작업을 하고 있으며, 영화 등 다른 장르로도 만들기 위해 ‘영상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샀다.

기생 황진이를 통해 16세기 지식인들의 고뇌를 탐구한 김탁환 씨의 장편 ‘나, 황진이’는 최근 외주제작사 올리브나인에 드라마 판권이 팔렸다.

가야 역사의 기원을 추적한 ‘제4의 제국’을 최근 출간한 최인호 씨는 소설을 TV다큐멘터리로 옮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최 씨의 베스트셀러 소설 ‘겨울나그네’는 지난해 말 뮤지컬로 공연돼 히트를 친 바 있다. 이영도 씨의 판타지소설 ‘드래곤라자’는 게임으로 옮겨져 국내뿐 아니라 대만으로도 수출돼 큰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이렇게 소설이 주변 장르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소설이 가진 이야기의 힘이 새롭게 조명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설은 근대 이후 ‘최고의 이야기 예술’로 꼽히는 장르. 그러나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해 형식과 내용이 다양하게 발달돼온 소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대중의 관심이 영상 매체에 쏠리면서 ‘존재의 위기’가 심각하게 논의됐다.

그랬던 것이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서 인터넷 블로그와 미니홈피 등을 통해 ‘쓰기 열풍’이 불면서 이야기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소설가이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인 김탁환 씨는 “인터넷의 발달로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이야기들이 인터넷에 남겨지면서, 그간 멀어졌던 이야기가 새삼 친숙하게 다가왔다”고 설명한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즐기는 ‘만인 이야기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야기의 역사가 두툼하고 서사구조가 탄탄한 소설이 새삼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전통서사를 디지털콘텐츠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한 저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공저자 한혜원 씨도 “서사는 인간의 본질”이라면서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서사의 창조자이자 향유자가 되면서 그간 홀대됐던 서사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 판권을 사들인 제작사들 역시 원작의 서사 구조를 높이 꼽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급성장으로 콘텐츠 수요가 늘어난 것도 주요한 요인이다. 주피터필름 주필호 대표는 “한국 영화가 크게 발전하면서 기존 시나리오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소설 등 외부에서 콘텐츠를 수혈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 소스 멀티유스’ 시대의 도래는 작가들의 창작 단계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탁환 씨는 “내 소설이 다양한 장르로 가공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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