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통신]돌밭에 웬 베이스캠프? …잔돌 날아다녀

  • 입력 2006년 4월 2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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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에 거센 바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미국 케이블TV ‘디스커버리 채널’ 원정대가 안전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열었다. 전 창 기자
베이스캠프에 거센 바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미국 케이블TV ‘디스커버리 채널’ 원정대가 안전등반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열었다. 전 창 기자
《10일 엿새 동안의 카라반 끝에 드디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첫 느낌? ‘헉 헉’이다. 첫 번째 ‘헉’은 무슨 베이스캠프가 채석장과 다를 바 없이 완벽한 돌밭이냔 말이다. 여기에 바람은 얼마나 세차게 불어 대는지 잔돌이 날아다녔다. 그중 하나가 이번 원정을 위해 거금을 들여 산 등산용 선글라스를 때려 흠집을 냈다. 젠장.》

숨도 무지 가쁘다. 등산용 시계에 달린 기압계를 보니 540hPa. 평지의 약 절반밖에 안 된다. 물론 산소도 딱 절반 정도. 강아지처럼 헉헉거리며 숨을 가쁘게 쉬어도 가슴의 갑갑함이 풀리지 않으니 신경이 저절로 곤두섰다.

두 번째 ‘헉’은 상상했던 것보다 빈약해 보이는 에베레스트의 모습이었다. 산꾼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그런 걸 어떡하랴. 에베레스트의 웅장한 자태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는 노스페이스(북면). 하지만 인근 낮은 산들이 눈과 빙하를 입고 순백의 자태를 보이는 반면 에베레스트는 벌거벗어 시커먼 흉물처럼 보였다.

“뭐 이래?”라고 한마디하자 박영석 등반대장이 서둘지 말라고 한다. “3박 4일만 걸어서 해발 7000m의 노스콜에 도달하면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경관을 볼 수 있을 거야, 기다려.”

야크 등에 올리는 짐은 이렇게 일일이 저울로 잰다. 짐을 20kg씩으로 묶어 좌우에 하나씩 매단다.
그래도 2일 선발대로 떠나 본대보다 3일 먼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대원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들이 반가웠던지 포옹을 하고 펄쩍펄쩍 뛴다.

순간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기어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며칠 떨어져 있어도 저렇게 보고 싶어하는데 만일 등반 사고라도 난다면….”

다른 사람들에겐 이따금 신문에 나오는 평범한 사고 기사이지만 대부분 서로를 알고 지내는 산악인들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괜한 생각을 했구나’라는 후회는 베이스캠프 입성 첫날 밤부터 시작됐다. 동맥혈산소포화도를 측정해 보니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 되는 30%(정상은 85% 이상)를 나타내는 등 4명의 대원이 심한 고소증세를 보였다. 당장 정상에서 사용해야 할 산소통이 나왔고 이들에게 나란히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17명의 대원은 물론 이번 원정대를 후원하는 LIG손해보험에서 베이스캠프를 방문한 4명의 응원단 등 21명이 본부텐트에 2시간가량 함께 있었지만 텐트를 때리는 바람소리 이외에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결국 다음 날 3명의 대원이 지프 편으로 하산했고 12일에도 베테랑 대원 한 명이 하산을 자청했다.

14일까지 5100m 베이스캠프에 입성한 닷새 동안 심한 두통과 구토 등 고소증세를 견디지 못하고 낮은 곳으로 내려간 대원은 5명. 12일 고소증세와 관계없이 바쁜 일정 때문에 하산한 구자준(56·LIG손해보험 대표이사 부회장) 원정대장을 제외하면 16명 중 거의 3분의 1이나 내려갔다.

아! 여기까지는 예고편이다.

베이스캠프에 태풍과 위력이 같은 초속 17m의 바람이 불어 대원과 셰르파들이 텐트를 치는 데 곤욕을 겪었다.
13일 6300m에 전진베이스캠프를 구축하기 위해 선발대로 올라간 오희준(36) 등반부대장이 다급한 무전을 보내왔다. “실수로 황산을 입에 댔습니다. 곧 하산하겠습니다.” “뭐, 황산?” 고산 캠프에서는 태양열을 이용해 자동차용 배터리를 충전해 전기로 사용한다. 그 배터리 충전액이 바로 황산이다.

히말라야 8000m급 고산 6개 봉을 등정하고 남극점과 북극점에 도달한 베테랑 오 부대장의 실수에 베이스캠프 대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는 점은 있었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혈액 내 산소포화도가 낮아져 판단능력이 흐려지는 것. 여기에 방심이 겹치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밤새 내려온 오 부대장은 15일 지프 편으로 카트만두로 진료를 받으러 떠났다. 전날 고소증세가 악화돼 폐부종 증세로 중국과 네팔의 국경을 넘어간 최기순(46) 대원에 이은 2번째 귀향. 최 대원은 북미 최고봉 매킨리와 히말라야 그레이샤돔, 칸텡그리를 등반한 베테랑. 하지만 고산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듯 그는 이번 원정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16일에는 오 부대장이 하산한 뒤 홀로 전진베이스캠프를 지키고 있던 이형모(27) 대원이 고소증세로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박영석 대장은 “6600m 전진베이스캠프부터 1400m 카트만두까지 환자들이 즐비하구먼. 먹을 것, 입을 것 잘 가려서 자기 몸은 스스로 잘 챙겨라. 한번 하산은 인정할 수 있지만 두 번째는 ‘고 홈’이다. 준비된 대원만이 정상에 설 수 있다”고 대원들을 독려했다.

혹시 아픈 것을 참고 숨기다 큰일을 당하는 대원이 나오지 않을까. 이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베이스캠프의 하루 최고기온은 섭씨 33도, 최저기온은 영하 8도로 일교차가 무려 41도나 된다. 이런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긴다면 녹다운이다. 숨기려고 해도 절대로 숨길 수 없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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