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이인행 변리사-권소현 감정평가사 부부

  • 입력 2006년 3월 3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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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각각 변리사와 감정평가사 시험에 도전해 성공한 이인행(왼쪽) 권소현 씨 부부. 변영욱 기자
30대 초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각각 변리사와 감정평가사 시험에 도전해 성공한 이인행(왼쪽) 권소현 씨 부부. 변영욱 기자
《부부는 용감했다. 그러나 부모 친구 동료들은 이들의 선택을 무모한 도전이라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2003년 하이닉스반도체의 박사급 연구원이던 남편 이인행(제일국제법률특허사무소 변리사) 씨와 입시학원 수학 강사였던 아내 권소현(부동산서브 감정평가사) 씨는 둘이 합쳐 연 1억 원에 가까운 소득을 포기했다. 두 사람은 각각 35세와 31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변리사와 감정평가사 시험에 도전했다. 샐러리맨들의 꿈의 하나인 ‘전문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였다.》

이 씨와 권 씨는 2005년과 2004년에 변리사와 감정평가사 합격증을 따고 현업에서 활동 중이다. 남편은 합격자 중 다섯 번째 고령자였고, 아내는 수석을 차지했다. 말렸던 친구들도 이제는 모두 부러워한다.

이 씨 부부의 합격 비결을 들었다.

○ 적성을 먼저 따지다

“남들이 좋다는 자격증 대신 적성에 맞는 자격증을 택했죠.”

두 사람은 비교적 짧은 기간(2년)에 시험에 합격한 것은 공부가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소에 관심을 뒀던 분야여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

이 씨는 하이닉스반도체 재직 시절 글로벌 메이커들이 얽힌 특허 분쟁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이때 그는 자신이 기술 개발보다 이를 법률적으로 다루는 업무에 더 흥미를 느낀다는 것을 인식했다.

“특허 업무가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변리사들에게서 진짜 변리사 같다는 과찬도 들었고요.”

아내 권 씨는 ‘부동산 마니아’였다.

중고교생 시절부터 신문 경제 기사를 꼼꼼히 읽었고, 대학 재학 때는 재테크 특히 부동산 기사를 열심히 읽었다. 부동산 정보 업체들이 ‘뜬다’고 하는 지역을 찾아가 정보를 수집하고 가격을 측정해 본 적도 있다.

“수학 강사 출신이니 공인회계사 시험에 도전하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원래 관심이 많았던 부동산 평가 업무에 더 끌렸습니다.”

○ 그룹 스터디를 하라

“혼자 공부하는 시대는 끝났죠. 함께 공부하며 약점을 보완하고 자극도 받아야 합니다.”

전문 자격증 시험은 ‘그룹 스터디’를 통해 준비하라고 부부는 조언한다.

이 씨는 서울대 도서관에서 비슷한 나이와 경력의 ‘변시생(변리사 준비생)’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그는 이를 통해 취약 과목인 ‘민법’을 보완했다.

권 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교환을 하던 또래들과 그룹을 만들어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그는 부동산 정보를 토대로 가격을 계산해 내는 ‘감정평가실무’ 과목을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그는 “그룹 멤버들의 경쟁에서 긍정적인 자극을 많이 받았다”며 “혼자 연습 문제를 풀 때와 여러 명이 경쟁하며 할 때의 효율이 크게 다르다”고 밝혔다.

○ 격려의 녹음 테이프로 서로 돕다

지망 자격증이 다른 데다 이 씨는 대학 도서관, 권 씨는 독서실을 선호해 부부는 함께 공부하지는 않았으나 공통 과목인 민법은 같이 공부했다. 핵심 내용을 각자의 음성으로 녹음한 테이프를 서로 교환해서 듣는 게 이 부부의 공부법.

이들은 ‘졸지 마’ ‘조금만 더 힘내’ ‘열심히 해’ 등도 함께 녹음해 전했다.

“지하철에서 테이프를 들으며 졸고 있었는데 오빠의 ‘권소현 지금쯤 졸리겠지’란 장난스러운 음성이 들려 깜짝 놀라 깼어요.”

“여자는 남편이 녹음해 준 것을 들으며 졸지 몰라도, 남자는 아내가 녹음해 준 내용을 들으면 절대 그럴 수 없죠.”

○ 주위의 눈총을 이겨내다

“신랑은 왜 학생처럼 옷을 입고 다녀요?” “둘 다 고시생이면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해요?”

부부는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꼽았다.

저축한 돈이 있는 데다 육아 부담도 없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으나,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호기심이 부부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특히 남편의 스트레스가 컸다.

“낮에 집 근처에서 이웃을 마주치면 왠지 저를 ‘백수’로 생각하는 듯했어요.”

이 씨는 “이런 ‘오해’가 싫어 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섰으며 불필요한 관심을 피하려 약 1년간 가족이 아닌 이들의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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