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무의식은 없다…‘굿바이 프로이트’

  • 입력 200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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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프로이트/스티븐 존슨 지음·이한음 옮김/311쪽·1만3000원·웅진지식하우스

희로애락의 감정은 심장에서 나오는 것인가, 뇌에서 나오는 것인가. 과학과 철학, 생물학과 심리학을 통합하고 있는 ‘뇌 과학’은 감정이 뇌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자. 여기서 뇌는 우리가 컴퓨터에 비유했던 그런 뇌가 아니다.

뇌는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여 이성적 판단을 주관하는 신피질(새겉질)이 있는가 하면, 우리 몸의 감정과 스트레스 대응을 조절하는 각종 호르몬의 발신지로 변연계가 있고, 생존 본능을 주관하는 아몬드 크기의 편도 등 중층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런 중층 구조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게 모듈(module)이란 개념이다. 우리의 뇌는 모든 정보가 컴퓨터의 중앙연산처리장치(CPU)에 집결된 뒤 통일된 지령을 내리는 구조가 아니다. 뇌를 구성하는 여러 모듈은 각자의 기능을 하면서 경쟁적으로 나를 향해 아우성친다. “나 좀 봐요, 나를!”

나는 그중에서 한두 개의 모듈만을 선택해 집중할 뿐이다. 그러나 선택되지 못한 모듈들이 삐쳐서 자신의 기능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편도와 같은 모듈이 나의 선택 전에 이미 내 몸을 장악해 버릴 때도 있다. 예를 들어 한번 뱀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면 옆에 뱀 형태 같은 것이 쓱 지나간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내 몸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신피질이 그것이 뱀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편도의 지배를 받는다.

또 속으로 경쟁자로 여기고 있던 동료가 자신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며 내게 고민을 토로할 때 나는 연민을 표해야 하는데 아주 짧은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통제하지 못해 당황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웃음의 반사작용 속도가 신피질의 판단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미국 중서부 초원에 사는 들쥐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며 정절을 지키고 사는 몇 안 되는 포유류 가운데 하나다. 신경내분비학자 한 명이 이들의 뇌를 조사해 옥시토신을 차단했더니 들쥐들은 즉시 무차별적인 짝짓기를 시작했다. 이를 사람에게 적용해 보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이처럼 최첨단 뇌 과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일상생활의 호기심을 풀어 간다. 그는 우리가 왜 그렇게 모순적이고 자아는 왜 그렇게 찢겨 있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프로이트가 부여한 죄의식에서 자유롭게 해 준다.

프로이트가 말한 욕망은 우리 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모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모듈은 주목받지 못했다고 억압됐다고 느끼지도 않고 왜곡된 형태로 분출되지도 않는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차라리 모듈의 자동화로 재해석돼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근친상간을 피하는 것은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DNA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원제 ‘Mind Wide Open’(2004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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