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의 탄생과 변천=가톨릭이 말하는 내세는 천국과 저승, 연옥, 지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전에 고성소(古聖所)라고 불리기도 했던 저승은 천국과의 경계지역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머무르는 곳을 말한다.
저승은 2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 구약의 성조(聖祖)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다. 이들 성조는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린다. 또 영세를 받지 못하고 숨진 아기들이 가는 저승도 있다.
저승이 처음부터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418년 천국과 지옥 이외에 중간지역은 없다고 강조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세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따라서 영세를 받지 못하고 숨진 아기들은 예외 없이 지옥행이었다.
중세에 들어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비로소 저승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기처럼 죄 없이 죽은 이들이 영원히 사는 곳이었다. 천국만큼 행복하지는 못하지만 ‘자연스러운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성경에는 저승에 관한 분명한 근거가 없다.
그러나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저승의 지위는 크게 약해진다. 영세 없이도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결정 때문이다.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교리문답에서 저승이라는 용어를 뺐고 선종 직전 영세 없이 죽은 아기들의 문제를 검토하라고 요청했다.
▽저승을 둘러싼 현실=전 세계 신학자 30명이 이달 초 교황청에서 개최한 국제신학위원회에서도 아기들이 핵심 쟁점이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신앙교리성 수장이던 1984년 “저승은 신학적 가설에 불과하므로 없앴으면 한다”는 개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저승의 현실적인 존재 의의도 없지 않다. 영유아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는 최근 가톨릭의 교세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아기들의 영혼이 저승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제의 얘기는 어머니들에게 위안이 된다.
교황청이 배아도 생명으로 보고 낙태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점도 또 다른 변수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생명의 구원 문제에도 견해가 제시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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