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유신과 중화학공업-박정희의 양날의 선택’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7분


코멘트
◇ 유신과 중화학공업-박정희의 양날의 선택/김형아 지음·신명주 옮김/416쪽·2만 원·일조각

1987년 민주화 이래 집권여당은 줄기차게 박정희 시대의 유산 청산을 외쳐 왔다. 그러나 모든 국민조사에서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유능한 대통령의 자리를 한 번도 양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대한 평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호주국립대 교수(정치사회변동학)로 있는 저자가 쓴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은 “박 대통령이 독재는 했지만 경제는 잘 했지”라는 일반의 상식에 도전하는 책이다. 이 책은 유신독재와 한국의 경제성장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유신독재에 염증을 느껴 대학 졸업 후 호주로 이민을 간 저자는 1996년 ‘박정희의 자주사상: 근대화와 민족중흥’이란 박사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를 발전시켜 2003년 발간한 ‘Korea's Development under Park Chung Hee: Rapid Industrialization, 1961∼79’의 번역본이 이 책이다.

유신독재와 경제성장정책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여러 편의 논문이 발표돼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유신독재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대미 자주권 확보를 위한 군사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가설에 있다.

저자는 박정희의 유신독재나 국가주도 경제성장 정책이 모두 한미 간 충돌을 야기할 만큼 독자성을 추구한 결과라는 점에 주목한다. 또 박정희 시절 핵심 경제브레인은 미국친화적인 경제기획원이 아니라 미국 유학 경험이 없는 대통령비서실과 상공부 출신의 테크노크라트들이라는 점을 발견한다. 저자는 이를 박정희-김정렴(청와대)-오원철(상공부) 3두체제로 설명한다. 미국의 불확실한 안보 우산에서 벗어나 독자적 자주국방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중화학공업의 육성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국내외의 반발을 잠재우고 국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유신체제가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박정희는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성실한 모범생이 아니라 반항아였다. 그것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해야 했던 굴신의 치욕을 다시 겪지 않겠다는 강렬한 자주의식의 소산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권력욕도 그 같은 정치적 야망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유신독재와 중화학공업 육성도 야누스의 두 얼굴과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분석했듯이 애증의 양가감정은 근대화 이후 우리 시대의 공통분모다. 유독 박정희만 붙잡고 고민할 문제는 아니란 뜻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