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며 글 쓰기싫어 비평誌 창간… 당당한 ‘아웃사이더’

  • 입력 2005년 6월 9일 03시 05분


코멘트
문단의 '성역'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와 비평' 동인 정은경 이경수 최강민 고봉준 씨(왼쪽부터). 신원건 기자
문단의 '성역'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와 비평' 동인 정은경 이경수 최강민 고봉준 씨(왼쪽부터). 신원건 기자
《‘여름 언덕’이라는 출판사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주택가의 오래된 양옥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반년마다 한 권씩 나오는 비평 전문 문예지인 ‘작가와 비평’의 편집 동인들이 제3호를 펴내기 위해 세 번째 둥지를 튼 곳이다. 이들은 그동안 한 권 내고 나면, 다음 호는 어디서 내야 할지 두리번거려 왔다. “한번 해보자”는 뚝심으로 문학계 성역들에 비판의 칼끝을 쉬지 않고 들이대자 확실한 아웃사이더로 취급받게 된 것. 이들 역시 그걸 인정한다. 하지만 “원해서 하는 일”이라며 씩씩함을 잃지 않는다. 이들 동인은 리더 격인 최강민(39) 씨와 이경수(37) 정은경(37) 고봉수(35) 씨다. 모두 문학박사에, 정통 관문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했다.》

최 씨는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한 뒤 작가 하성란 씨에 대한 평론을 썼으나 이를 실어줄 문예지를 찾지 못했다. 하 씨가 뛰어난 작가임에 분명하지만 당시의 ‘단편들은 긴장도가 떨어지고, 장편은 얼개가 단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평론이었는데 출판사들이 부담을 가진 것.

“문예지의 눈치를 보는 평론을 쓰는 게 싫어져 버렸어요. 비평답게 쓸 독립 지면을 만들고 싶어 뜻 맞는 동인들을 모았지요.”

그 결과물로 지난해 4월 ‘작가와 비평’ 창간호를 내놓았는데, 400쪽짜리 책의 절반이 갖가지 문학상에 대한 해부인 ‘문학상 제도의 빛과 그늘’이라는 특집이었다. 이상, 현대, 동인, 김수영문학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들이 “시장 눈치를 너무 본다” “원칙 없고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줄줄이 비판당했다. 이 창간호는 1000부가량 팔려 나갔다.

그러나 창간호를 발행해준 출판사가 다음 호 출간에 난색을 보여 최 씨는 고심 끝에 출판사를 직접 차려야 했다. 출판사 이름은 ‘작가와 비평’으로 지었다. 1인 출판사 사장이 된 그는 호주머니를 털어 제2호 ‘작가와 비평’의 외부 필자들에게 원고료도 보내줬다. 이렇게 해서 나온 제2호의 200쪽짜리 특집은 ‘진보적 문학의 현주소’.

“민중문학을 말해온 ‘창작과 비평’의 글들에 엘리트주의적인 난해함이 보인다. 필진에 학벌주의가 보인다” 등의 거침없는 비판들이 실렸다.

다음 주 나올 제3호에는 ‘비평의 위기와 문학주의’라는 특집이 실린다. 최근 10년간 크게 떠오른 계간지인 ‘문학동네’의 문학주의, 1970년대생 작가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글들이 실린다고 한다.

“어쩌다가 사장이 된 다음 건강보험 등록 등 갖가지 ‘숙제’에 시달리다가 끝내 ‘작업장 폐쇄 신고’를 했어요. 결국 후덕한 ‘여름 언덕’을 만나 다행이에요.”

비판 정신이 충실한 이들에게 돌아오는 비판은 뭘까? “‘아웃사이더들의 권위 흠집 내기’라는 비판이 나와요. ‘이렇게까지 헐뜯을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분도 계시고요. 글이 거칠다는 말도 듣습니다.” 고 씨의 솔직한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침묵 대응을 많이 받아서, 일단 우리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

최 씨는 “하성란론을 결국 ‘창작과 비평’에 실었는데 그 후 (내 비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글이 훨씬 좋아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평론이 좋은 대중문학까지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의 힘을 북돋는 길은 여러 가지일 것 같다. 열심히 쓴 문학평론들이 사랑받고 즐겨 읽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